“죽음 무릅쓰고 총알 날랐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죠” [한국전쟁 정전 70년 한신협 공동기획]
도용복 (주)사라토가 회장
세계 190여 개국을 다닌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도용복(81·사진) (주)사라토가 회장은 건강하고 활기찼다. 대구 대백프라자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인 전시회 관람과 특강을 위해 대구에 왔다. 도 회장은 음악과 여행을 사랑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도 회장은 다부동 전투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는 줄타기를 했다. 국민학교 1학년, 여덟 살 때였다.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피란길에 올랐습니다. 전쟁 통에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저와 어머니, 동생 등 네 식구는 우여곡절 끝에 칠곡 다부동 고개를 넘었는데, 다부동 전투가 벌어지기 불과 며칠 전이었을 겁니다.”
어린 나이에 안동서 걸어 다부동까지 온 도용복과 동생들은 배가 너무 고팠다. 어머니에게는 타지에서 자식을 챙겨 먹일 마땅한 방도가 없었다. 그때 귀가 번쩍하는 희소식이 들렸다. 국군의 총알 나르는 일을 하면 흰쌀밥을 고봉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소년은 자기보다 큰 지게로 전투가 벌어지는 다부동 고지로 총알을 날랐다. 소년은 고지를 오가면서 군인과 민간인이 죽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또래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어른에게 물어보니 인민군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무서웠다. 그만하겠다고 했다.
도 회장은 “살면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죽음(고개를 가로저으며), 배고픈 것이다. (총알을 나르는 일을) 안 한다고 작심하고도 아침이 되면 쌀밥 유혹에 또 간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소년에겐 죽음의 두려움보다 배고픔의 고통이 더 컸다. 아침 식전 탄약통 2상자를 왕복 3~4시간 거리의 고지로 나르고 오면 정말 혼자서는 다 못 먹을 양의 쌀밥이 나왔다. 집에서 굶고 있을 어머니와 동생 생각에 호박잎을 따 주먹밥 두 덩이를 먼저 만들어 챙겼다.
그렇게 소년은 15일 정도 죽음을 무릅쓰고 다부동 고지로 총알과 전쟁 물자를 날랐다.
도 회장은 “(살면서)무섭고 겁나는 게 없다”고 했다. 어린 시절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참전국에 각별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위정자들은 불경일사 불장일지(不經一事 不長一智·한 가지 일을 거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구절을 꼭 새겨야 합니다. 6·25전쟁을 겪었지만 교훈을 얻지 못하면 같은 불행은 반드시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글·사진=이영욱 매일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