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찰나에서 영원으로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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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은 한 가지 재능도 얻기 힘들다. 그런데 여러 능력을 두루두루 갖춘 사람들이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복합적인 화성을 바탕으로 매혹적인 선율을 작곡하는 능력이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거대한 손으로 피아노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놀라운 연주 테크닉. 오케스트라가 지닌 최상의 소리를 끌어내는 악기 조율 능력도 출중했다. 그의 이름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 차이콥스키를 잇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마지막 거장으로 명성을 드날린 인물이다.

고통이 없으면 영광도 없는 법이다. 정상에 서기까지 내면의 상처가 만만찮았다. 이 역시 세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우울증’ ‘혹평’ ‘향수병’. 교향곡 1번 초연의 비참한 실패로 지독한 절망감과 무기력증에 빠진 때가 있었다. 그를 살린 건 최면 요법이었다. ‘자네는 훌륭한 곡을 쓰게 될 것이야. 그건 멋진 협주곡이 될 것이야.’ 담당 의사는 3년간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그는 늘 비평가들의 악평을 달고 살았다. “얇은 감각에 의존하고 선율만 강조하는 단순한 음악.” 쇤베르크의 무조주의나 스트라빈스키의 전위 음악이 휩쓰는 당대 사조와 비교해 턱없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었다. 망명 뒤에는 미국 땅에 동화하지 못한 아픔이 있다. 전기 작가들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의 병을 앓았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에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휘몰아친다. 아름다움은 치열함 혹은 지극함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교향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 독주, 오페라, 합창, 가곡까지 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작품을 부지런히 썼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음악을 향해 흘렀던 것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일 테다. 그의 레퍼토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무대에 오르고 있다.

28일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고한 지 8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오는 4월 1일은 그가 태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기묘하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인접해 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른 세월이 꼭 70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애. 결국 우리 곁에 남은 건 음악이다. 그는 인간의 유한성을 넘는 불멸의 가능성을 음악에서 찾은 게 아닐까. 아름다움이야말로 영원을 사는 비결이라는 것. 그게 메시지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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