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세계박람회와 미래도시 부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염원 행사. 부산일보DB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염원 행사. 부산일보DB

신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 1893년 시카고박람회장 건물은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흰색 인조석으로 마감한 건물에 거대한 기둥이 늘어선 모습은 그리스 신전을 방불케 했다. 검은 도시 시카고의 매연과 소음, 무질서와 부패를 새하얀 휘장으로 감추고 백색도시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백색도시 바깥에 유흥공간 미드웨이 플레장스(Midway Plaisance)를 설치하였다. 이곳에 인간 전시장이 있었다. 이국 문화를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아프리카와 자바, 사모아 원주민들을 데려와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을 ‘전시’하였다. 백색도시가 문명의 신전이라면, 미드웨이 플레장스는 미개와 야만을 상징하는 셈이다. 이 공간의 끝자락에 동물원을 배치하였다. 인종을 서열화함으로써 백인 문명국가의 우월성을 확보하고자 했을 것이다.

시카고박람회는 한국이 처음으로 참가한 세계박람회다. 행정가와 통역사, 악공(樂工)들로 단촐하게 구성한 대표단은 제물포를 출발해 부산, 요코하마,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시카고에 이르렀다. 정식으로 설치된 한국관에 가마와 관복, 부채, 짚신, 화승포와 같은 물품 21종을 선보였다. 윤치호는 물품이 빈약하여 부끄러웠노라 말했지만, 관람객들의 관심은 꽤나 높았다. 쏟아지는 질문에 일일이 응대하기 어려워 물품 이름과 용도를 종이에 써서 붙여놓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옷감과 자리, 문발, 자개장, 자수 병풍은 우수 품목으로 꼽히기도 했다.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는 인도네시아 전통 기악합주 가믈란을 선보였다. 청동 타악기가 주선율을 연주하면 다른 악기들이 정교하게 선율을 장식해 나간다. 청동의 깊고 묵직한 음향과 철의 청아한 음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심장을 울리는 소리의 공명과 유려한 리듬을 서양음악의 기보 체계에 어떻게 담을 수 있겠는가. 가믈란은 드뷔시와 라벨 등 파리의 음악가들을 단숨에 매료시켰으며, 뒷날 존 케이지, 벤저민 브리튼과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박람회는 비서구 식민지문화를 야만적 볼거리나 문명의 타자로 호출했지만, 관람객들은 제국주의적 시선에 쉽게 포획되지 않았다. 드뷔시가 가믈란이라는 창을 통해 신비와 몽환에 이른 것을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으랴.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2030세계박람회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곧 부산을 방문한단다. 박람회는 다양한 문화가 길항하며 새롭게 탄생하는 공간이다. 유럽문화를 기계적으로 추수하던 과거와 달리, 이질적인 문화가 저마다의 색채로 들끓으며 자신의 존재성을 한껏 발산하는 장이다. 부산은 낯선 문화와 충돌하면서도 이를 오롯이 품으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온 혼종도시가 아니었던가. 여기, 세계박람회를 통해 문화의 착종(錯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 접경의 생명력으로 출렁이는 미래도시 부산이 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