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평 마트에 주인이 123명? 갈등 불씨 지핀 ‘상가 쪼개기’ [이슈 추적, 왜?]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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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기대 해운대 대우마리나

지하상가 1곳 통째 35억에 산 법인
123개로 나눠 1곳당 2억 넘게 매각
입주권 내세워 벌써 50여 곳 분양
주민들 “재건축 차질 우려” 반발
해운대구청 “절차 하자 없다” 뒷짐

부산에서 재건축 기대감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대우마리나 아파트가 때아닌 ‘상가 쪼개기’로 눈길을 받고 있다. 지난해 A법인이 대우마리나 1차 지하상가 1개 호실을 통째로 매입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 법인은 매수 직후 전유부분 변경을 거쳐 1개 호실을 100개가 넘는 소규모 상가로 분할했다. 이후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며 전용면적 3평이 채 되지 않는 개별 상가 매수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뜨거운 이슈가 된 상가 현장을 찾아 목소리를 듣고, 무엇이 문제인지 추적했다.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A법인 측은 상가 쪼개기가 합법적이며, 향후 상가·아파트 분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은 물론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꼼수 분양’ 논란과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 대우마리나 아파트. 부산일보DB 부산 해운대구 우동 대우마리나 아파트. 부산일보DB

■뜨거운 감자 ‘상가 쪼개기’

A법인은 지난해 8월 대우마리나 1차 지하상가 전용면적 1044㎡(약 316평) 1개 호실을 35억 원에 매입했다. 법인은 마트로 성업 중이던 곳을 각각 전용면적 9.02㎡(약 2.7평)인 123개 호실로 나누는 이른바 ‘상가 쪼개기’를 단행했다. 10월에는 호실당 2억 2500만 원에 공개 매각하기 시작했다.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3월 29일 기준으로 구분등기된 123호실 중 50개 이상이 거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A법인이 현재까지 올린 매도 차익은 수십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가 쪼개기를 통해 기존 54실이던 대우마리나 전체 상가는 176실로 늘어났다. 전체 상가 수의 70%가 3평이 채 되지 않는 지하 상가로 바뀌게 된 것이다. 단 한 개 호실이었던 상가를 하루아침에 123개로 나누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A법인은 재건축 아파트 입주권을 내세워 분할한 상가를 판매해 차익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쪼개진 상가는 재건축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리고, 사업을 장기 지연시키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 단지 내 아파트와 상가는 하나의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통합 재건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우마리나 아파트 재건축 조합 설립을 위해선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상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 동마다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재건축 아파트에 달린 상가는 전체를 1개 동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재건축이 성사되려면 지하 상가주의 결정권이 ‘캐스팅보트’가 된다.

전체 상가 면적의 20%에 불과한 지하상가 소유주들이 상가 전체 소유주 수의 70%를 차지하게 되는 왜곡된 의사결정 구조가 주민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셈이다. 만약 이들이 재건축 동의를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을 유도하거나, 사업 자체에 반대한다면 재건축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상가 소유주들이 입주권을 받게 되면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 재건축 사업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아파트 측에서는 상가와 분리하는 재건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가 제척을 위한 공유물 분할소송 등을 통해 상가를 재건축 사업에서 따로 떼어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이 경우 원 상가 소유주 53명이 반발하면 아파트 조합과의 분쟁이 생길 수 있다. 양측이 상가 제척을 두고 법적 공방까지 치달으면 재건축 사업이 장기간 발목을 잡힐 우려도 커진다.

■‘갈등의 싹’ 방치하는 해운대구

A법인 측은 “통합 재건축을 하되 상가와 아파트 부지에 각각 허용된 용적률을 최대로 활용하는 등 별개의 방식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아파트는 아파트대로, 상가는 상가대로 재건축을 진행하면 사업 상호 간에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하면 아파트와 상가 소유주의 이해관계 불일치에 따른 사업상 위험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마리나 주민과 상가 소유주들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상가 소유주는 “사업 내용이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상가 조합원이 늘어나면 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원 소유주 입장에서는 불리한 방향으로 사업이 흐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렇듯 재건축을 둘러싼 날 선 공방이 불 보듯 뻔한데도 분할을 허용한 해운대구청은 관리 감독에 나서기는커녕 갈등의 씨앗을 제공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해운대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A법인이 상가분할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구비한 서류와 행정 절차에서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형식적인 재건축 관리 기준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예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서울시의 경우 시나 자치구 차원에서 개발행위허가 제한 등을 걸어 재건축 예정지의 상가 지분 쪼개기를 금지하고 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비가 예정된 주요 단지별로 보다 엄격한 관리 잣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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