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빚 앞에 장사 없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작년 나랏빚 1000조 원 첫 돌파
코로나 극복 위한 확장재정 영향

효용성 불구 가파른 증가세 불안
이젠 국가채무 엄격히 관리할 때

미래 위해 구속력 갖춘 장치 필요
‘국회서 낮잠’ 재정준칙 도입 절실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 데도 일단 다가오는 가을에 있을 수확물을 염두에 두고 빚부터 내고 본다는 뜻이다. 또는 추수철인 가을에는 빚을 내기가 쉬우므로 빚부터 얻어서 분수에 맞지 않게 흥청망청 쓴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어쨌든 자기 분수나 앞으로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빚에 의지하는 것으로, 지금 당장의 안일함에 취해 미래의 부담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의미가 강하다.

빚에 관한 속담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기 분수를 넘는 빚은 경계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나라를 운영하든, 가정을 꾸리든,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일부러 빚을 내야 할 때도 있고, 또 빚이 없는 상태가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빚 앞에 장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은 국가나 가정이나 다르지 않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2022년 국가결산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나랏빚에 대한 걱정이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순채무(중앙정부에 대한 채무는 제외)가 사상 처음 1067조 원으로, 1000조 원을 넘었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놀랐다. 1000조 원은 보통 사람의 수치 감각으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국가채무가 2018년 680조 원에서 4년 만에 1000조 원을 돌파하면서 정치권에선 또 책임 공방이 불거졌다.

대략적으로는 코로나19를 겪었던 지난 3년간 내수 진작과 전 국민 대상의 지원금 확보를 위해 수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확장재정 영향으로 나랏빚이 많이 늘어난 탓이다. 코로나 시기 기댈 곳 없었던 소상공인 지원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확장재정의 필요성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느 정부라도 코로나와 같은 비상시국에는 비상한 정책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1000조 원의 국가채무가 비록 놀라운 규모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정책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비상한 국면이 지나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와야 한다. 더구나 중장기적인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 국가재정에 관한 문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지난해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었다는 것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채무의 증가 속도다. 지난해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9.6%였는데, 이는 처음 40%를 넘어선 2020년(43.8%) 이후 불과 2년 만의 일이다. 작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처럼 조세·재정개혁이 없으면 최악의 경우 국가채무 비율은 2060년께 GDP 대비 230.9%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다 나랏빚이 약 5배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빠른 채무 증가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물론 국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나랏빚 1000조 원을 넘어선 우리나라는 지금도 분당 1억여 원씩 빚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1800억 원가량으로 올해만 60조 원이 증가할 예정이다. 향후 4년간 이자만 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국가채무 제어 장치의 필요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제도적으로는 재정준칙 마련이 첫손에 꼽힌다. 그런데 현재 재정준칙 법제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8개월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다.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정부의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에서 적자 한도를 GDP의 -3%로 제한하고, 부채 비율이 GDP 대비 60%를 넘기면 적자 비율을 -2%까지 낮추는 게 핵심이다. 여야 모두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치적 이해에 얽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고려하고, 또 대부분의 선진국이 재정준칙 아래 엄격하게 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보면 이 제도의 도입을 더는 미룰 수 없다. 더구나 내년 총선 등 정치 상황에 재정이 휘둘리지 않으려면 실효성과 구속력을 갖춘 제도 도입은 불가피하다.

일부의 우려처럼 재정준칙의 도입이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의 확대재정 요구와 꼭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 부양 수단으로 국가재정의 활용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급속한 나랏빚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어떠한 제도적 제어 장치도 없이 운용되는 국가재정은 필연적으로 방만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그 사례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돈을 마음껏 쓰는 일은 일견 즐겁고 폼 나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 후폭풍이 가혹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 빚 앞에 장사 없고, 더더욱 공짜는 없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