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 역사 기록’ 두고 시의회는 예산 삭감, 시는 뒷짐만
당초 주민참여예산 사업 선정
시의회 “부끄러운 역사” 반대
시는 의회에 떠밀려 ‘나 몰라라’
시민단체, 모금 프로젝트 펼쳐
“공공역할 민간에 떠넘겨” 비판
120년 된 부산 최대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의 예산이 부산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사업을 주도한 단체는 자체적인 모금에 나섰는데, 집결지 폐쇄부터 역사 기록까지 주도한 타 지자체와 달리 기록조차 말라는 부산시 모습이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은 지난달 3일부터 서구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아카이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종잣돈 마련 모금 프로젝트’에 나섰다고 11일 밝혔다. 모금을 통해 모인 돈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120년 넘게 전국 최대 규모 성매매 집결지로 존재한 완월동의 역사를 기록해 학술 잡지를 발간하고, 구술자료를 수집하거나 토론회를 개최하는 데 쓰일 전망이다.
이들이 모금에 나선 것은 완월동 아카이브가 당초 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됐지만, 시의회가 제동을 걸어 예산 지원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살림은 지난해 3월 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완월동 성매매 집결지 아카이브 사업’을 신청했다. 아픈 역사를 기록하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가 공감대를 얻어, 지난해 8월 주민참여예산 시정협치형 부문에서 최종 사업 10개 중 하나로 선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사업비 1억 280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중복사업을 실시한 적이 있고, 부끄러운 역사를 기록할 수 없으며, 해당 지역에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 최도석(서2) 시의원은 “성매매 현장인 1층 유리방을 만들어가지고(보존해서) 그걸 지역주민들이 외래관광객들이 청소년들이 둘러보고 (할 수 있겠냐)”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다.
살림은 해당 사업을 앞서 실시한 적이 없는 만큼 삭감 이유가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문화·예술 치유 성격으로 예산을 지원받은 적은 있지만, 실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살림은 부산문화재단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로 말하는 법’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2900만 원, 올해 3000만 원을 지원받아 시인, 사진작가가 시민과 함께 시, 사진, 회화를 제작해 현재의 완월동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또 일부 의원이 ‘유리방을 보존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기록 사업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지만, 사업 계획에는 완월동 내 업소를 사들여 전시관을 조성하거나 공간을 보존한다는 계획이 없다. 〈부산일보〉와 통화에서 최 의원은 “과거 서구청이 도시재생 사업으로 완월동 일대에 전시관을 조성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며 “그때 사례를 예시로 들어 이번 완월동 아카이빙 사업도 지역 반감만을 조장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 전담반까지 꾸려가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다른 지역 지자체와 달리, 부산에서는 시의회의 반대로 역사 기록조차 제동이 걸려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실상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위한 부산시의 주도적인 모습도 실종된 가운데, 공공의 역할을 민간에게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전주시는 탈 성매매 여성 자활예산 13억 5000만 원 등 2017년부터 예산 270억 원을 투입해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폐쇄에 앞장섰다. 선미촌 전담 부서를 꾸리거나 성매매 업소를 매입해 아카이빙관을 조성하는 등 폐쇄부터 자활 지원, 역사 기록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시는 2020년 3월 완월동 일대를 도시재생활성화 지역 1순위로 지정했으나, 같은해 국토교통부 도시재생사업 공모에서 최종 탈락한 이후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19년 탈 성매매 여성을 위한 자활지원 조례도 제정했지만, 코로나 등 이유로 아직 단 한번도 자활지원 예산을 편성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살림 부설 완월동기록연구소 임봉 사무국장은 “비록 잊고 싶은 역사라도 제대로 문제점을 짚고 기억해야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며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카이브 사업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