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범은 감옥 안 간다” 단순 투약 처벌 ‘솜방망이’ [일상 파고드는 마약]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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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조직’ 활동 검거 어려워
44% 집행유예, 실형 드물어
처벌 강화 경각심 심어 줘야

마약 판결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제공 마약 판결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제공

온라인 거래 확대, 일상 공간으로의 진입 등 마약 거래 환경의 변화로 자연스레 기존 마약 수사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수사 효율성 강화부터 투약자에 대한 적절한 처벌 기준 마련 등 마약에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요구된다.

최근 마약 범죄는 다크웹·SNS 등에서 암호화폐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는 수사기관의 마약 공급자 신원 확인과 자금 추적이 더 어려워졌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온라인 마약 판매의 72.8%가 이뤄지고 있는 텔레그램 측은 사실상 수사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 수사팀은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마약 거래를 뻔히 보면서도, 텔레그램 측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 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물론 텔레그램으로부터 회신이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오프라인 수사도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 마약 조직은 조직원 사이의 견고한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움직였다. 최근 마약 공급망은 내부에서도 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하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예전보다 윗선 추적이 훨씬 어려워진 이유이다.

현장에서는 마약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위장 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범죄 의도가 있는 마약상에게 구매자로 접근하는 ‘제한적 함정 수사’는 가능하다. 하지만 범죄 의도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특히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온라인에서 ‘위장 구매자’로 활동할 경우 법률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적극적인 수사가 어렵다는 게 현장의 하소연이다.

마약 조직원으로 위장해 조직의 범죄 혐의를 찾아내는 ‘잠입 수사’도 국내에선 불법이다. 이런 수사 기법은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최근 마약 수사에서도 잠입 수사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범죄학자들은 마약 범죄를 시장 경제의 산물로 보기도 한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마약 범죄의 규모가 정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거다. 이 때문에 마약 공급책을 찾는 것과 별개로 구매자를 단속해 수요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데, 처벌 측면에서 이 부분이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마약 집중 단속을 벌여 5702명을 검거했으나, 이 중 구속자는 791명에 머물렀다. 대부분 단순 투약자이기 때문에 구속자가 적은 것이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투약자 적발이 공급책을 찾는 것보다 수사 측면에서 훨씬 용이하다.

반면 단순 투약자들이 실형을 사는 경우가 드물다. 대검찰청 ‘2021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기소된 마약 사범 4747명 중 44%인 2089명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심 집행유예 선고 비중은 2019년 41%(1723명), 2020년 42.9%(1642명) 등으로 꾸준히 느는 추세다. 이러다 보니 “아직 잡힌 적이 없다면 감옥 갈 일도 없다”는 게 상식이 됐고, 이는 마약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검사 출신인 부산의 한 변호사는 “처벌 강화가 범죄를 줄이는 걸로 직결되는 건 아니지만, 음주운전 처벌처럼 투약자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며 “다만 중독의 문제가 있으니 재활, 치료 등도 동시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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