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피아노 선생님 열정이 음악 신세계 열어줘”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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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부산시장상’ 박송이

‘엑스포 국제콩쿠르’ 대학부 3등
4세 때 시력 잃어 빛 겨우 분간
피아노 소질… 7세 때 본격 교습
한예종 재학·아르테복지회서 활동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박송이(왼쪽) 씨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박송이 씨 제공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박송이(왼쪽) 씨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 박송이 씨 제공

“이번 수상이 다른 장애인 예술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열정적인 선생의 도움으로 어엿한 피아니스트가 된 시각 장애인이 이제는 장애인 예술가단체에서 다른 장애 예술가를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장애 인식 개선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행사에서 부산시장상을 받는다.

부산시는 19일 "피아니스트 박송이(32) 씨에게 20일 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행사에서 부산시장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030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 부문에서 3등상을 수상하는 등 장애 인식 개선의 공로를 인정 받았다.

박 씨는 네 살이 되던 해에 시력을 잃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원인을 모르니 마땅한 대책도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박 씨는 현재 빛과 어둠을 분간하는 정도로만 앞을 볼 수 있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 음악이 자리를 잡았다. 시작은 피아노 장난감이었다. 어머니 이경선 씨는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으면 송이가 장난감 피아노로 그걸 따라 연주했다”며 “곡을 연구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피아노에 소질과 관심을 보인 일곱 살 딸을 동네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다. 자식의 관심사를 응원해 주고 싶은 여느 부모와 똑같은 평범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동네 피아노 학원은 시각 장애인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박 씨를 받아 주지 않았다.

피아노에 대한 박 씨의 열정은 그래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인생 첫 ‘은사’를 만나게 된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개인 피아노 교습을 하던 주민이 소식을 접하고 박 씨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둘의 피아노 수업 방식은 남달랐다. 선생이 먼저 피아노를 치면 박 씨가 뒤따라 곡을 따라 치는 방식이었다. 악보를 볼 수 없는 박 씨를 위한 교육 방법이었다. 박씨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 집에서 밥을 먹는 등 피아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도움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양손 연주가 가능해졌을 때 선생님에게 자랑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며 “굉장히 열정적으로 그리고 열린 생각으로 나를 대해 줬다”고 추억을 되살렸다.

박 씨가 8세 때 시각장애인 학교인 청주맹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둘의 연주는 1년도 안 돼 멈췄다. 하지만 당시 배운 기본기는 박 씨에게 ‘나침반’이 됐다. 박 씨는 이후 부산예술고등학교 콩쿠르에서 2등으로 입상해 부산예술고에 진학했고,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악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박 씨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연주자로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박 씨는 “내 음악 인생의 첫발을 떼게 해 준 분”이라며 “어릴 때 헤어져 연락할 방법이 없어졌다. 다시 연락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음악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 씨는 이번 수상이 비슷한 다른 장애인 예술가, 음악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재 장애인 예술가단체 ‘아르테문화복지회’에 소속돼 부산의 장애 음악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장애 음악인 자립과 장애 인식 개선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박 씨는 “이번 수상이 선한 영향력을 미쳐 많은 이에게 응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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