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서울 '지옥철', 해법은 간단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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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경기도~서울 지하철 압사 사고 우려
국내 인구 절반 수도권 집중이 문제
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지방 분산해야
업무 아닌 가족 불편함이 주저 원인
줌·온라인 심사 등 90% 비대면 업무
꼼수 버리고 대승적으로 결정해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 부산시민운동본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 13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 부산시민운동본부 등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 13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국회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서울 ‘지옥철’ 보도를 봤느냐”는 전화를 몇몇 기업인들로부터 받았다. 자칭 진보와 보수라고 행세하는 서울 언론들이 “경기도~김포공항역을 잇는 김포도시철도 출근길 압사 사고 우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대서특필했다. 정원을 훨씬 넘는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에서 3~4시간을 출퇴근하는 수도권 서민들의 서러움을 공감할 수 있었다.

과연 특단의 대책이 있을까. 경기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도로망을 조기 착공하고, 버스 전용차로 신설, 한강에 통근용 리버보트를 운행하는 것이 해결책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사실 해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빙빙 둘러서 정답만 피할 뿐이다. 지하철과 도로가 들어가면, 역세권에 아파트가 세워지고, 지방 청년들이 몰려들고, 또다시 지옥철 사태가 재연되는 악순환이 수도권 일극주의 50년의 역사이다. 지옥철을 보도한 해당 언론조차 “국내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며 대부분 서울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탓에 단순히 배차 확대만으로 지옥철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다”라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단지 모른 체할 뿐이다.

‘특단의 대책’은 기사 그대로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 절반’을 분산하는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정부와 국회가 합심하면 곧바로 이전 가능하다. 그런데 공공기관 지방 이전 문제만 나오면 진보·보수연하는 언론사는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까지 “국가 경쟁력을 잃어버린다”고 득달같이 달려든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수도권에서 매일 3~4시간씩 걸리는 출근길에서 ‘죽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비효율적인 상황에서도.

그 기업인은 ‘불편함’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모든 사람이 다 서울에 살고, 서울에 본사를 둬야 일이 잘된다는 믿음, 그래야 모든 게 금방금방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버리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자기 회사 서울지사 직원 대부분이 오전 7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9시까지 출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한때 서울 공공기관마저 계약 조건에 ‘서울에 본사가 있을 것’이라고 요구하던 시대에, 본사를 옮길 생각도 했지만, 수백 명의 직원들이 같은 월급에 생활·통근요건이 좋은 부산에 살고, 임원들만 2시간 30분 걸리는 KTX를 타고 서울로 출장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코로나 이후 베트남, 인도네시아에 격주로 다니는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줌을 통한 회의와 협의, 온라인 심사 등 비대면 업무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회사 소재지는 괘념치 않는 세상이 됐다. 금융권 거래의 90% 이상이 비대면이다. 산업은행 지하금고에 수조 원의 현금을 쌓아 두는 것도 아니고, 최고 갑(甲)인 국책은행 행원 모두가 현장 영업을 뛰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매일 3~4시간씩 지옥철을 갈아타고 헐레벌떡 출퇴근하는 게 업무 효율이 떨어지지 않을까. 생활 환경이 좋은 서울에서 이탈하면 뒤처진다는 걱정, 서울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못 간다는 염려 탓이지, 국책은행과 국가의 효율, 목적을 따지는 마음은 애초부터 없다는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란 말이 ‘지옥철을 타도 서울이 좋다’로 들리는 이유다.

지옥철 뉴스가 보도된 그 신문에 ‘전국 초등학교 145개교 신입생 0명’ 기사가 실렸다. 96%인 139개교가 비수도권이었다. 경북(32개교), 전남(30개교), 강원·전북(20개교), 경남(18개교) 순이다. 6년 뒤면 저 숫자만큼 중학교 신입생이 0명이 된다. 지금도 청년들은 서울로 떠나는 중이다. 지방 소멸은 ‘예정된 미래’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을 책임지는 국책은행과 공공기관은 ‘국가 효율성’을 들먹이며 모르쇠로 잡아떼고 있다. 웃픈 현실이다.

당대표는 서울에서 부패의혹, 전 당대표는 프랑스에서 돈봉투 살포 혐의를 해명하느라 바쁜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산은이 이전하면 정책 금융 기능이 약화되고 업무 공백이 초래된다”라고 주장한다. 정치와 공공기관의 역할이 무엇인가. 지방의 비효율성이 우려된다면, 그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IT강국에서 기관 간 협의조차 비대면으로 안 된다면 그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 뒤에는 어떤 이유가 반드시 있다. 회사일이 아니라 자기와 가족의 불편함, 수도권-지방 갈등을 증폭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려는 망국적인 꼼수가 결탁한 것이 이유다. “언제까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서울이라는 꿀단지에 빠져, 국토가 텅텅 비는 꼴만 쳐다볼 것인가. 그런 부끄러운 짓 그만둘 때도 됐다”는 기업인의 언짢음이 귓가에서 가시질 않는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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