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총선 1년… 갈 길 바쁜데 손발 묶인 원외 인사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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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 정치부 차장

부산의 한 행사장. 주민들이 빼곡히 모여 단상을 바라봤다. 의례적으로 지역 국회의원이 제일 먼저 축사를 했다. 국회의원 뒤를 이어 구청장, 군수 등 기초단체장이 올랐다. 축사가 끝나갈 무렵에도 원외 위원장이나 정치 신인 차례는 오지 않았다. ‘찬밥’ 취급당하는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지만 늘 심장이 기름 튀는 불판에 올려 진 것처럼 아팠다.

참다못한 원외 위원장은 축사가 끝나갈 무렵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기 위원장도 왔습니다. 인사합니다’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신의 이름과 인사말이 담긴 1인 피켓도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행사장이 어수선해졌지만 얼굴과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내년 총선을 1년 정도 앞둔 지금, 원외 인사나 정치 신인은 서글프다.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위해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이지만 그 기회를 잡는 게 무척 힘들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지역 행사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찾아가보지만 금세 두 주먹에 힘이 쭉 빠진다.

대다수 행사장에서 원외 인사는 축사 등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단상에 오를 기회라도 잡으면 감격에 겨울 정도다.

행사뿐만 아니다. 원외 인사는 현역 국회의원에 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지만 몸도 마음도 번번이 기울어지기 일쑤다. 현행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이 현역과 원외 간 차이를 두며 원외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있다.

현역 의원은 지역에 사무실과 직원을 두고 운영할 수 있는 반면 원외 인사는 사무실과 유급 사무직원을 둘 수 없다. 선거에 나설 의향이 있는 원외 인사는 지역 행사나 카페를 전전한다.

또 현역 의원은 선거가 없는 해에는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그러나 원외 인사는 원칙적으로 후원금을 받을 수 없고 선거 기간 중 예비후보 자격을 가졌을 때에나 모을 수 있다. 이외에도 현역 의원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토론회·간담회·의정보고회 등을 열 수 있지만 원외 인사는 불특정 다수에게 명함이나 활동보고서 등을 돌리지 못한다.

내년 총선을 1년여 앞두고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 간 경쟁이 불공평하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취지에서도 주민들이 원외 인사를 보다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보다 많은 정보를 얻고 보다 나은 후보를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야가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법을 만들고 개정하는 현역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자신과 경쟁해야 할 원외 인사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정치 신인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정치개혁 과제는 번번이 뒷전으로 밀렸다.

해묵은 얘기지만 선거에서 주인공은 국회의원 같은 정치인이 아니라 유권자이다. 선거 정보가 한 쪽으로 치중돼 왜곡된 상황에서 그 주인공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할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 간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한 이유이다.


김형 기자 m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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