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함께 아이를 키우는 나라
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한국, OECD 국가 중 출산율 꼴찌
15년간 280조 원 썼는데 ‘헛일’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 품고
육아를 환영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출산 선택해도 절대 후회 없도록
모든 여건 제공하는 게 국가의 의무
합계출산율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출산율 꼴등.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5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80조 원을 썼지만 여전히 최저 출산 국가라고 한다. 10여 년 전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교과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배운 기억이 있다. 인구수는 점점 줄어들고, 아이들이 사라지고, 그래서 국가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수업하시던 선생님은 “너희들 커서 아이 많이 낳아야 한다”라고 말했고, 우리는 먼 미래의 일이라 큰 고민 없이 “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점점 나의 일로 다가오니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체감하게 된다. 지금 청년들에게 아이 낳지 않을 이유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전통적인 가족을 꾸리는 사람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결혼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개인의 신념이나 상황 등을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 나아가 결혼하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살거나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꾸리는 등 삶의 모습은 한층 다양해졌다. 최근 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결혼하지 않는 현세대를 어떤 중요한 걸 ‘포기’한다는 측면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아 결혼을 택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보다 작금의 청년들은 결혼이나 독신이나 비슷하다고 보고 있고, 그게 무엇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이득’인지를 따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삶의 형태나 신념에 맞게 다양한 가족을 시도하는 청년들이 생겨난다.
일단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독려해야 한다는 국가적 마인드를 잠시 내려놓고, 다양한 청년들이 자발적인 가족을 많이 이룰 수 있도록 사회가 다양한 가족 공동체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기르는 비혼모나 비혼부들도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는 어쩌다 친구 여러 명이 함께 살게 되고 그중 한 명에게 아이가 있어 공동으로 육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내 친구 중 한 명도 저렇게 친구들과 같이 살면서 공동육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만약 다양한 가족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로 사회가 바뀐다면, 육아의 짐을 함께 짊어지고 같이 키우는 다양한 선례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만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를 키울 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거나, 일과 육아 병행이 어려워서 고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여성의 입장에서 출산과 육아는 개인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실 이미 대책은 많이 나왔다. 올해부터 부모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했을 경우 첫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를 지원하는 ‘3+3 부모 육아휴직제’가 시행되었다. 육아휴직을 보내는 사업주가 첫 3개월 동안 월 200만 원씩 받을 수 있는 제도도 신설됐다. 이런 제도들이 반갑긴 하지만 일회성 지원이라서 좀 더 지속적인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가 아플 때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고, 불안감 없이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이와 달리 경직된 사업장이 많다.
육아를 환영하는 분위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이를 낳으면 매달 휴가를 추가로 부여하거나, 아이의 육아비를 일정 부분 지원해 준다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꼭 보호해 주는 등 좀 더 현실에 발붙인 복지 제도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일본에서는 ‘식스 포켓’이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여섯 명의 주머니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의 돈으로 겨우 아이 한 명을 키워 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게 돈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여섯 명의 노고가 있어야 아이 한 명을 겨우 키워 낼 수 있는 상황을 보여 주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죄스러운 마음으로 여러 명에게 육아를 부탁하지 않아도 회사가 이를 지원해 줄 수 있도록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사회의 다양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저출산 문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저출산이 문제라고 해도 국가를 위해 출산을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국가가 할 일은 적어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끔 여건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런 인생 선배들이 많아지고 일하면서도 충분히 육아할 수 있는 현실이 만들어진다면,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수업 시간의 선생님 말씀에 더 우렁차게 대답할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