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16. 일상을 복귀시키는 실험, 조승호 ‘무제(Untitled)’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조승호의 2004년작 ‘무제’는 실험 비디오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무음으로 된 3채널 비디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채널은 물이 꼬르륵 내뿜어지면서 거품이 일어나는 장면, 두 번째 채널은 타자기의 부품이 수면을 쳐서 물이 튀는 장면, 세 번째 채널은 담뱃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세 영상은 모두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날 법한 장면을 매우 구체적인 질감으로 담고 있다. 굳이 모더니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예술은 특별하고 예외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마련이며, 여기서 일상적인 것은 흔하고 지루하기 때문에 몰가치하다고 폄하되곤 한다. 반면 흔히 말하는 아방가르드는 일상적인 것을 가지고 예외적인 것에 대항하는 전략이었다. 말하자면, 레디메이드는 뒤샹이 와글와글 모여있는 예외적인 것 사이에 던진 폭탄 같은 것이었다. 예외적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모두 거짓이었다니!’ 사람들은 충격 받는다.

미술사에서 레디메이드는 몇 가지 판본이 있다. 그 중에서도 독일 플럭서스의 작가 조지 브레히트는 조명 스위치를 켜고 끄는 등 일상적인 반복 행위를 일종의 레디메이드라고 보고 작업했다. 그의 동료인 조지 마키우나스는 이를 두고 ‘레디메이드-액션’이라고 불렀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미지야말로 현대적 레디메이드에 걸맞다고 생각했다. 조승호의 ‘무제’가 보여주는 반복적인 일상의 단면은 일상을 복귀시키는 이런 실험의 계보 위에 있다.

‘백남준의 후계자’로 잘 알려진 조승호는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으로 학사와 석사를,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비디오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세계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으며, 2012년에는 타임스퀘어의 미드나이트 모멘트에 참가해 대규모 멀티채널 설치 작품인 ‘부표(Buoy)’(2008)를 선보인 바 있다. 조승호 작가는 현재 뉴욕에 거주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안대웅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