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챗GPT와 지방소멸 시대의 윤리
논설실장
‘짜깁기의 끝판왕’ 가짜 콘텐츠 양산
언론과 학문 영역에서 적신호 켜져
윤리 문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
지역언론은 지방소멸까지 이중고
내용 데스킹·의제 설정 기능 강화
기자 정신· 솔루션 저널리즘 절실
“‘챗GPT와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만 되어도 오늘 PPT 강의 자료를 모두 없애야만 할 겁니다. AI 혁명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뜻입니다.” “챗GPT는 언제 거짓말할지 모르니 언론사마다 데스킹을 잘해야 하며, 패턴화된 기사는 AI에게 맡기더라도 의제 설정 기능은 강화해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해 나가야 합니다.”
챗GPT 열풍이 거세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부르고 있는 가운데 특히 교육 현장과 뉴스 현장의 위기의식은 남다른 데가 있다. <부산일보>가 최근 사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연속특강 ‘챗GPT가 몰고 온 AI 혁명과 미디어의 미래’는 새로운 기술이 언론을 어디로 데려갈지를 전망하는 흥미진진한 자리였다. ‘기사 만들기’ ‘다른 논조 합치기’ 같은 듣도 보도 못한 글쓰기의 새로운 무공(?)을 ‘시전’할 때는 밥그릇의 위협을 느낄 정도다.
언론과 학문 영역은 요즘 챗GPT의 직격탄을 맞은 듯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2022년 11월 30일 오픈AI(OpenAI)가 공개한 챗GPT는 언어모델과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 인간 수준의 텍스트 생성 능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짜깁기의 끝판왕’이랄 수 있는데, 글쓰기를 바탕으로 세워진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아성에 위기를 알리는 적신호가 들어온 셈이다.
되돌아보면 우리 언론 환경은 1990년대 들어와 급변하기 시작했다. 문선공이 뽑은 납 활자로 조판하는 등 활자 시대의 마지막 세대로 언론사에 들어온 기자는 원고 작성 등 모든 과정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 시대를 거쳐 1995년 인터넷 혁명, 2010년 모바일 혁명, 2023년 AI 혁명을 차례로 경험하는 중이다. 미디어는 언제나 변화에 활짝 열려 있었던 셈이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지적이 있었지만 이번의 챗GPT는 기존의 매체혁명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기술의 진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글쓰기의 주체인 기자의 아이덴티티를 단도직입으로 위협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 가짜 콘텐츠의 확산 우려가 벌써 현실화하고 있어서다. 교육 현장에서의 연구 윤리와 함께 뉴스 현장의 보도 윤리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 특히 지방언론이 맞고 있는 위기는 중층적이다. 디지털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지방소멸이라는 내부적 환경 변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기에 그렇다. 따라서 한국기자협회가 전 세계 50개국 언론인들을 초청하여 24~29일 개최하고 있는 ‘2023년 세계 기자대회’의 키워드가 ‘디지털’과 ‘로컬’인 것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디지털 전환과 미국 지역신문의 붕괴 현상인 ‘뉴스의 사막화’에서 보듯 로컬 저널리즘이 새로운 위기에 노출되어 있어서다.
디지털은 물론이고 지방소멸 역시 윤리 문제와 맞닿는 지점이 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고, 각종 특혜도 쏠려 있는 것은 사람에게나 국토에나 대단히 비윤리적이다. 수도권 주민은 일등 국민이고 비수도권인 지방 주민은 2등 국민이라는 차별과 배제가 오롯하다.
지방 홀대는 정치권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대단히 문제적이다.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수도권 승리에 올인한다는 방침을 서슴지 않고 밝히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도 수도권 30석을 목표로 한다니 할 말이 없다. 지방 주민은 아예 유권자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아가 이들 정치인은 사표를 방치함으로써 표의 등가성에 심대한 문제를 일으키는 현 소선거구제를 고치는 데도 부정적이다. 186가지에 달하는 특권과 특혜를 누린다는 국회의원이 유권자의 개혁 요구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이다.
진선미(眞善美)는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가치다. 철학을 비롯한 학문 세계에서도 중심을 이뤄 왔다. 지성(인식능력) 의지(실천능력) 감성(심미능력)에 각각 대응하는 진선미의 완전성은 논리학, 윤리학, 미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조명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기술의 진보와 함께 도덕적인 가치판단과 규범을 따지는 윤리가 갈수록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온라인 콘텐츠 대부분이 인공지능이 생산한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공공연하다. 이런 가운데 잘못된 내용을 그럴듯하게 얘기해 혼란을 야기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환영 환청)은 사회 혼란을 부채질할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가짜 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되어 온 소셜미디어(SNS)에 대한 규제에 이미 착수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팩트를 추구하는 저널리즘 정신, 기자 정신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는 것인가.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