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물 하역 등굣길 참사, 말뿐인 어린이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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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시간 안전 위협한 불법 작업 방치
처벌 강화에 앞서 근본적 대책 필요

지난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오후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인근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숨진 아이를 추모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지난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오후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인근 지역 주민과 학생들이 숨진 아이를 추모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 영도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등교하던 열 살 초등학생이 대형 화물에 부딪혀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이번에도 어린이보호구역은 어린 생명을 지켜 주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8시 22분께 영도구 청학동 한 초등학교 인근 경사로에서 하역 작업 중이던 지게차에서 화물이 굴러떨어졌다. 원통 모양의 1.7톤 규모 어망실이 경사로를 따라 170m를 구르며 가속도가 붙었고 등교하던 초등학생 3명과 30대 여성을 덮쳤다. 이 때문에 30대 여성과 2명의 초등학생이 부상을 당하고 A(10) 양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현장에는 A 양을 추모하는 조화가 쌓였다.

해당 스쿨존에서는 지난해 7월 내리막길을 주행하던 16톤 정화조 차량이 전봇대를 들이받고 뒤집혀 차량이 전소되고 60대 운전자가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영도구청은 사고 후 안전 펜스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 펜스가 무단횡단 방지용에 그칠 정도로 약해 아무런 안전 장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서도 1톤이 넘는 화물이 덮치자 산산조각 날 정도로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어린이를 위한 안전 조치가 시늉에 그친 셈이다. 또 정차도 금지된 스쿨존에서 등교 시간 제대로 된 안전 조치도 없이 불법으로 위험한 작업이 이뤄지는데도 아무런 제재나 관리 감독도 없었다. 스쿨존에서 불법으로 위험한 작업이 반복됐는데도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구청의 책임도 따져야 한다.

끊이지 않는 스쿨존 사고는 어린이 보호가 얼마나 말뿐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지난달 8일에는 대전의 한 스쿨존에서 음주 운전 사고로 아홉 살 초등학생이 숨졌다. 사회적 공분이 일자 국회는 스쿨존 음주 사고로 아동이 사망하면 징역 26년을 선고하고 운전자 얼굴을 공개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러나 2020년 스쿨존 교통사고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일명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심지어 민식이법에 대한 위헌 소송이 제기되고 스쿨존 내 속도 제한이나 정차 금지 완화 목소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민식이법 위헌 소송에서 “어린이는 안전을 판단하고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위험을 어른과 똑같이 온전히 평가하지 못하는 특성이 있기에, 어린이 안전사고 대책을 마련할 때는 이런 취약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어린이 보호 조치가 당연하다는 결론이다. 문제는 강력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스쿨존 내 근본적 안전 대책이 먼전 마련돼야 한다. 단속 카메라 몇 대 늘린다고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도로 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나 보행 전용 도로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어린 희생을 막기 위한 전방위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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