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가덕도 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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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

평생 움직이기 싫어하는 도시인으로만 살다가 뒤늦게 걷기에 재미를 붙였다. 틈나는 대로 부산의 대표적인 걷기 명소인 갈맷길 코스를 하나씩 완주하고 있다. 모든 길이 나름대로 흥미로운 사연과 아름다움을 갖추었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은 강서구에 있는 가덕도였다. 부산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왔음에도 난생처음 가 본 가덕도는 정말로 아름다운 섬이었다.

마을이 형성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거의 청정 자연 지대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섬 정상인 연대봉에 올라 탁 트인 3면의 바다와 푸른 섬을 바라볼 때면 내가 부산시 경계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섬에는 조선 시대의 성곽과 일제강점기의 근대 유산도 산재해 있었다. 대항항 인근에 복원된 동굴 포대는 오래전 할리우드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본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가덕도는 자연 풍광과 목가적인 어촌 분위기, 역사 유적이 잘 어우러져 가히 여행자에게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신공항 예정 부지로만 다루는 언론

발전 도구·정치 논란 섬으로 만들어

주민은 배제되고 잊힌 존재에 불과

지역언론, 다각적으로 접근할 필요

하지만 언론에 비친 가덕도는 내가 직접 경험한 곳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곳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덕도라는 이름을 접할 때마다 ‘신공항’ ‘2030엑스포’ ‘공법’ ‘지역균형발전’ ‘정치적 논란’ 등의 단어를 떠올린다. 그동안 가덕도는 중앙 정치 차원에서 정치적, 정책적 공방 대상인 신공항 부지로서만 다뤄졌을 뿐이다. 물론 이곳을 다녀간 많은 외부인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 청정의 섬을 예찬한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가덕도 주민에게는 낙후됨과 불편함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 이곳에 터 잡고 삶을 꾸려 가는 주민 역시 비슷한 감정을 표현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마 이러한 찬탄의 태도 역시 이 섬을 공항 부지로만 여기는 외부인의 편향된 시각과 마찬가지로 잠시 스쳐 가는 외부인의 감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가덕도의 아름다움과 조만간 다가올 변화를 생각하면서, 오래전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정철의 ‘관동별곡’이 떠올랐다. 이 글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임금에 대한 충정을 유려하게 묘사한 글로 알려져 있다. 이 글 속의 관동은 한양에서 관찰사로 파견된 관리의 시선에서 본 지역이다. 백성들은 기근에 시달리는 가운데 강원도 곳곳을 순회하면서 풍광과 풍물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더불어 중앙 정치판 복귀에 대한 희망을 그렸다는 점에서 목민관으로서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이 점에서 이 글의 시선은 언뜻 오늘날 가덕도를 대하는 외부인의 태도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동별곡’이 수도권 사대부의 눈에 비친 낭만화된 지역 묘사라면, 가덕도를 지역 발전의 도구로만 보는 시각이나 자연 예찬의 감성 역시 이른바 ‘변방’을 대하는 외부인의 시각에 불과하다. 이들의 눈에는 정작 가덕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배제되어 있다. 가덕도는 수도권이나 부산 도심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보호구역으로, 개발제한구역으로, 공항 부지로 갖가지 제약 때문에, 이 명목상의 부산시민들은 대도시 안의 변방인으로서 인내하며 살아왔다. 실제로 가덕도로 들어가는 길은 놀라울 정도로 멀고 불편했다. 가덕도 안쪽에 위치한 대항항으로 가려면 그나마 가까운 도시철도 1호선 하단역에서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타야 했다. 오후 6시가 넘으면 배차 간격은 더 벌어졌다. 한적한 정류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며 옆자리 할머니와 담소하는 것은 외부인에겐 목가적인 경험이었지만, 가덕도 주민들도 그렇게 느낄지는 의문이다.

지역언론에서 지역은 늘 수도권 집중의 희생자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지역 안에서도 중심부와 변방은 존재하며, 중심부의 정책적 논의에서 이 변방은 배제되고 잊힌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가덕신공항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균형발전’이라는 단어는 이 점에서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이 섬에는 공항 부지뿐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적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처럼 생업과 일상에 종사하는 부산시민이 살고 있다. 전설의 괴물 불가사리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갈수록 비대해지는 수도권을 비판하면서, 정작 지역 자신도 이 괴물을 닮아 가고 우리 안의 또 다른 희생자를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지역 안의 지역이라도 언론이 보여 주는 만큼만 알 수 있다. 지역언론은 가덕도를 다룰 때 환경과 문화유산 보호, 공항 건설로 초래될 산업 입지와 도시 구조 변화 등 다각적 측면에서 좀 더 깊이 있게 접근해야 한다. 앞으로 가덕도 문제는 또 하나의 ‘관동별곡’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실록’으로 써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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