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구청, 초등학교 ‘불법 주정차 단속 요청’ 묵살했다
“급경사지 전반적 개선 필요하다”
청동초등, 1년 전 위험 호소 불구
불법 단속카메라 설치 등 미뤄
시교육청 개선 주문도 반영 안 돼
청동초등이 지난달 28일 발생한 부산 영도구 10세 여아 등굣길 참사(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등 보도) 1년 전에 지자체와 경찰에 학교 앞 불법 주정차 차량 단속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측의 요구가 1년 넘게 묵살되는 바람에 불법 주정차에서 시작된 예견된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어린이보호구역 앞 단속카메라(폐쇄회로TV·CCTV) 의무 설치 등 어린이보호구역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 전반의 업무 협업 체계,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일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청동초등은 지난해 4월 14일 영도구청과 영도경찰서에 통학로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후문 통학로 급경사 지역에 과속 차량이 많아 차량의 인도 돌진 우려가 크기 때문에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 전반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후문 통학로 급경사 지역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공문에는 학교 앞에서 만연하는 불법 주정차 단속 요구도 포함됐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학교 앞 불법 주정차와 과속 단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청동초등 앞 어린이보호구역에는 다목적 CCTV 1대만 설치돼 있을 뿐 불법 주정차 단속카메라는 설치되지 않았다. 학교가 구체적으로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을 요구했는데도 구청은 가장 손쉬운 단속카메라 설치를 후순위로 미룬 것이다. 단속카메라만 설치됐더라도 사고를 일으킨 어망 제조업체 차량의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 하역 작업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자연스레 나온다.
학교와 함께 시교육청이 구청과 경찰에 청동초등 통학로 개선 요구 사항을 제시했던 사실도 확인됐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8월에 실시한 청동초등 통학로 개선 용역 결과에 따라 구청과 경찰에 위험성이 높은 통학로여서 주택 앞에 안전펜스를 설치해야 하고, 후문 앞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사고 위험이 높으므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구청과 경찰이 사고 전 두 차례 신호에 대응책을 마련했더라면 이 같은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같이 교육 당국의 수차례 요구에도 통학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행정기관의 협업 부재, 안전불감증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 어린이보호구역 내 도로 행정은 구청이 맡고 신호, 교통 체계 등은 경찰이 관할한다. 어린이보호구역 관리 체계가 일원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의 요구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시, 부산경찰청 등과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5개월간 통학로 안전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시교육청이 지난달 주최한 청동초등 통학로 안전 협의회에서도 학교 앞 불법 주정차 문제가 재차 논의됐지만 이후 한 달간 단속카메라 설치 등 실효성 있는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불법 주정차 단속카메라 설치를 담당하는 영도구청 관계자는 “순차적으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단속카메라를 설치하다 보니 해당 초등학교 보호구역에는 아직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영도구의 어린이보호구역이 29곳이다. 매번 청동초등 일대를 단속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고 해명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