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교' 입장 무시한 스쿨존, 참사 부른 이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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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례 안전대책 요구 구청·경찰이 묵살
안전 계획에서도 학교 현장 목소리 배제

영도 스쿨존 사망사고 추모공간 사진설명 지난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일 오후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숨진 아이의 언니가 쓴 글이 남겨져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영도 스쿨존 사망사고 추모공간 사진설명 지난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의 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1일 오후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숨진 아이의 언니가 쓴 글이 남겨져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 영도구 초등학생 등굣길 참사와 관련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전관리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안전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반복되는 지적이지만 이번 참사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고가 발생한 현장의 초등학교 측은 학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행정 당국에 수차례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주체인 학교 측의 목소리는 묵살됐다. 애초 스쿨존에 대한 안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학교는 배제돼 있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스쿨존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가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 결과가 이번과 같은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청동초등학교는 지난해 4월 14일 영도구청과 영도경찰서에 통학로 개선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참사가 발생한 후문 통학로 급경사 지역에 과속 차량이 많아 차량 인도 돌진 우려가 크기 때문에 전반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앞에 만연해 있는 불법 주정차 단속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시교육청도 지난해 8월 청동초등 통학로 개선 용역 결과에 따라 구청과 경찰에 대책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불법 주정차 단속은 이뤄지지 않았고 불법 주정차 단속 CCTV 1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학교 현장의 반복된 목소리에 조금만 귀 기울였어도 막을 수 있었던 예견된 참사였다는 이야기다.

스쿨존 내 안전 계획 수립 과정부터 문제다. 스쿨존 내 도로 행정은 구청이 맡고 교통체계는 경찰이 관할한다. 이런 이유로 안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 학교 측은 아예 배제된다. 스쿨존 관리체계마저 이원화된 상황에서 학교 측 요구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릴 뿐이고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계획은 수립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정화조 차량 충돌 사고 후 안전대책으로 설치한 안전 펜스가 어린이 보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무용지물이었던 것도 이 같은 탁상행정의 결과다. 안전 계획 수립 과정에서부터 지자체와 교육기관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이유다.

경찰은 어망 업체 대표를 입건하고 스쿨존 내 불법 행위는 엄벌한다는 방침이다. 시는 스쿨존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하고 일반도로의 3배인 과태료를 5배로 올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앞서 이번 참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철처하게 파헤치고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어린 생명을 앗아간 불법이 반복되도록 방치한 구청과 경찰의 책임도 따지고 물어야 할 일이다. 참사를 당한 어린 학생의 아버지는 구청 측의 안일한 대처를 보고 영도에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를 자책한다고 했다.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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