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푸른 청춘의 독주회와 노동의 그늘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노동은 삶의 가치와 직결되어 있으며, 일자리는 우리 시대를 읽는 창이다. 인류 역사에서 노동은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기술과 사회 변화로 오늘날처럼 속도를 더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청년이 서 있다. 오월, 바람에 실려가는 송화가루처럼 환영받지 못하거나 때론 이 봄비에도 제 길을 내지 못하는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 지난 토요일,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권순지 독주회에 다녀왔다. 체크무늬 교복을 입은 앳된 모습으로 당차게 바이올린을 켜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다. 어느새 자신만의 빛깔로 단장한 청년음악가로 성장해 무대에 선 모습이 온통 푸르다.
객석에 앉았을 때 심경이 복잡했다. 두 번째 들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은 고난도 테크닉과 섬세한 감정표현이 필요한 곡이다. 꾹꾹 누르는데도 흘러넘치는 슬픔과 내면의 고독을 원숙한 열정으로 마무리했다. 이제껏 이저런 자리를 오가며 연주 경험을 쌓는 과정이 어찌 평탄했다고만 말할 수 있으랴. 브람스가 제아무리 심오한 메시지를 담았다 해도 서툰 연주는 관객의 마음에 가닿지 못한다. 성실한 공부와 연습, 마스터클래스 참가나 연주 활동을 꾸준하게 동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의 음악이 오월 봄비처럼 흩어지지 않고 관객을 뜨겁게 적실 일터는 어디에 있을까.
부산에 연주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란 거의 없다. 단발성 공연이나 지원사업, 레슨과 방과후학교 수업 비중이 높다. 바이올린 J, 플루트 K, 클라리넷 L, 호른 K 모두 아까운 연주자들이다. 실력을 갖추고 꾸준히 활동하는데도 부산에서 마땅한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막막한 현실에도 연주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투잡을 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러하니 부산의 음악대학은 쇠퇴일로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입학할 수 있을 만큼 악순환이 거듭된다. 유행처럼 청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해도 지역 이탈의 물결을 되돌리지 못했다. 지역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살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이즈음 부산에 대형 예술기관이 건립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와 국제아트센터다. 부산시향이 1962년 창단되었으니 60년 만의 호기인데다 뒷날에도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여태껏 좋은 일자리의 관점에서 논의하지 못했거나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자리를 차지하고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인심을 잃은 지역예술인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일자리란 단지 생계수단이 아니라 예술가가 사회적 존재로서 정체성을 발현하는 자리다. 성실하게 노력한 사람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은 공동체의 무거운 책무다. 청년예술가의 활동은 그저 좋아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치열하게 담아낸 자기 삶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