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아이들이 안전한 도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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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최근 스쿨존 사고, 난개발에도 책임
등·하교 위험 회피할 도시설계 절실
아이들 관점의 보행환경 조성해야

얼마 전 한 방송에서 평소 좋아하던 〈칼의 노래〉 작가 김훈의 15분 스피치를 보았다. 사회적 감수성이 뛰어난 70대 중반의 작가는 짧은 시간 동안 삶의 아름다움과 분노를 담담하게 토로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온 아이들, 학교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부,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의 모습 등 일상의 삶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일상을 방해하는 억압, 대립, 위험, 무한경쟁 등 왜곡된 사회 현실에 분노했다. 그의 말속에는 작은 울림이 있었다.

우리 일상에는 소중한 것이 가득 있다. 직장 출퇴근, 쇼핑, 가족과의 식사, 친구들과의 만남, 동네와 공원 산책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커 가는 것을 함께하고 지켜 주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김훈이 즐겨 찾으며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아이들의 일상적 모습은 우리가 필연코 지켜야 하는 소중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제각각 꿈을 꾸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일, 그것은 단순히 가정의 역할을 넘어선다.

미국에서 귀국한 후배가 어린 자녀들에게 해 준 말이 있다고 했다. “여기는 차량이 너희를 위해 비켜 주지 않으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우리 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실제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차 사고로 계속 잃고 있다. 특히 가슴 아픈 부분은 어린이가 즐거워야 할 학교 주변 통학로에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2019년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사망한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고 이후 스쿨존 주변의 차량 속도를 제한하고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안타까운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 주정차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낮 음주운전 차량까지 스쿨존의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이들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교육으로는 개선할 수 없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특히 부산의 학교 입지를 살펴보자. 부산의 오래된 대부분의 학교는 고지대인 산비탈에 있다. 계획적으로 도시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이미 주거지로 인구가 증가한 이후 그 주변에서 부지를 구해 학교를 짓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걸어서는 가기가 힘든 학교가 많아 그 주변에는 특히 차량이 많이 다니고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번에 안타까운 사고가 난 부산 영도구 청동초등학교처럼 입지 여건상 불리한 곳에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론적으로 스쿨존에서 계속 사고가 나는 이유는 무계획적인 난개발이 불러온 참사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을 위해 도입된 우리나라 도시계획은 국토 및 도시의 효율적 이용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 보니 산업단지와 도로 확보에만 신경을 쓰고, 학교와 도서관과 같은 생활 인프라 확보는 늘 뒷전이었다. 최근 교육청이 일조 장애 등 교육환경 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지만 오래된 입지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

100여 년 전 미국의 페리(C Perry)는 지금은 전 세계의 현대 토지이용 계획의 기초가 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600m의 마을 설계기준을 제시했다. 모든 도시계획의 기본이 되는 마을계획 수립 시 학교의 위치를 우선하여 결정하고 주변에 주택, 상가, 도로 등을 배치하는 것이다. 미국의 단지 설계기준이었던 쿨데삭(cul-de-sac)과 루프(loop) 등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갈 수 있게 한다는 게 이론의 출발점이었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는 어린이 놀이터와 학교를 중심으로 시간대별 차량 통제, 주택개발과 연계 개발을 실행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입지 여건상 불리한 곳에 대해선 좀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다고 주저하면 또다시 아이들이 희생될 수 있다. 최선의 방안은 도시재생과 마을 재구조화 사업을 연계해 도시설계를 새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이 단기간 내 가능하지 않다면 차선책으로 스쿨존 안전과 상충하는 공공시설 분석 및 어린이 통학 환경에 관한 공간정보 모니터링, 교통사고 발생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최근의 스마트시티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한데 시간대별 차량 인식시스템 기반 통제봉(블러드) 설치를 통해 아이들이 안전하게 집에서 학교까지, 동네에서 안전하게 걸어 다닐 방안의 도입도 시도해 볼 만하다.

아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도시가 삶의 기본이다. 아름다운 사회가 지속되려면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김훈 작가는 “생명을 지키는 시민들의 함성이 필요하다”는 말로 이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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