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과학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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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해수담수화 정책 실패, 불신에서 출발
원전 관련 문제 주민 수용성이 관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국민들 불안
일본 일방적 태도 주변국 불신 키워
한국 시찰단 실질적 활동이 중요
검증 과정 신뢰 회복은 일본 정부 몫

지금은 고철 신세로 전락한 부산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은 애초 미래 물 산업을 이끌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그 역사는 2006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설교통부는 미래 가치를 창출할 국가 10대 전략산업의 하나로 해수담수화를 선정하고 광주과학기술원에 해수담수화플랜트사업단을 발족한다. 광주과기원을 중심으로 고려대 등 학계와 두산중공업 등 산업계를 포함해 50여 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조직이 꾸려졌다. 사업단은 R&D를 통해 기존 열을 이용한 증발식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역삼투압 방식의 해수담수화 신기술을 개발하고 실증 단지(테스트 베드)를 만들어 산업화를 이룬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통해 세계 물 시장을 선점한다는 원대한 목표도 세웠다. 기장읍 대변리 2만 6400㎡ 부지에 200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하루 4만 5000톤 생산 규모의 세계 최대 해수담수화 시설을 2014년 12월 완공했다.

그런데 2010년 착공과 함께 당시에는 용어조차 생소했던 삼중수소의 등장으로 논란이 시작됐다. 바닷물을 식수로 추진하면서 주민 수용성을 간과한 게 문제였다. 원전 인근 해상에서 취수가 이뤄지는데 주민 공청회는 물론이고 식수 공급 계획조차 숨겨 불신을 키웠다. 결국 식수 공급은 벽에 부딪혔고 완공된 시설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미국위생재단(NFS)에 의뢰해 삼중수소는 물론이고 방사능 52개 품목에서 수차례 식수 적합 판정을 받았다며 주민 설득에 나섰지만 한번 잃은 신뢰는 되돌릴 수 없었다.

삼중수소 논란은 일본 정부가 지난해 4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상 방류를 결정하면서 다시 불붙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후 제1원전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1000개 이상의 탱크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매년 늘어나는 오염수 저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해상 방류를 결정한 것이다. 일본은 오염수를 ‘알프스’(ALPS·다핵종제거설비)로 정화한 뒤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는 해수로 희석시켜 방류한다고 밝혔다. 현재 130만 톤에 이르는 오염수를 30년에 걸쳐 조금씩 방류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의 동의를 받은 상태로 상반기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을 마치고 올 여름부터 방류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방류 결정 후 우리나라를 비롯해 바다를 접하고 있는 주변국들이 반발하고 나선 건 당연한 수순이다. 세슘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오염수를 알프스로 걸러 낸다지만 삼중수소 등 일부는 거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데다 유해성을 놓고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도 오염수 방류에 따른 환경 영향이 미미하다는 주장과 해양 생태계에 누적돼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이런 상항에서 불신을 더 키운 건 일본의 태도다. 주변국과의 충분한 협의나 투명한 자료 공개 없이 IAEA 검증만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이터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본의 아소 부총리 겸 재무상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라도 처리 과정을 거치면 마셔도 괜찮다”고 발언해 논란만 자초했다. 지난달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린 G7 기후·에너지·환경장관 회의가 끝난 후 일본의 니시무라 경제산업상이 후쿠시마 처리수의 바다 방류를 환영한다는 것이 공동성명에 포함된 것처럼 발표하다 독일 렘케 환경부장관이 “오염수 방류를 환영할 수는 없다”고 밝히면서 발언을 정정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일본은 1986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직후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기 중 방사능을 채집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한·일 간 셔틀 외교 복원으로 관계가 급진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하자 일본 기시다 총리가 우리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한국 시찰을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23~24일 전문가로 구성된 시찰단을 파견한다. 일본이 오염수 문제에 진전된 입장을 보인 것이라는 평가와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정치 쇼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는 가운데 실효성 있는 현장 검증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시다 총리도 처리수 방류와 관련해 한국민들의 우려가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밝힌 만큼 제대로 된 검증을 위한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무리 과학이라며 데이터를 들이댄들 검증 과정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은 불안하다. 하물며 일본과 바다를 마주하고 있고 수산업의 중심지인 부산 시민의 불안은 더하다. 이 불안을 해소시키는 것은 일본의 몫이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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