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징후 / 오윤경(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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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서 연기가 났으면 좋겠어

공중을 매달았으면 좋겠어

풀들이 발목을 꺾어 버렸으면 좋겠어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꿈

잡아당길수록 돌돌 끝이 말리는 밤의 지평선

그 격렬한 거리 속

부릅뜬 눈빛 아무리 맞추고 맞잡아 봐도

포개어지지 않는 방식으로부터

침묵을 끌어들인 시도로부터

나의 사막엔 도착하지 않는 깃발들

말라가는 구름과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표정들

어디쯤에 나를 묻었는지

버려두어도 혼자 자라는 기억의 것

버려도 이만큼 다정한 적의라면

내 손바닥이 펄럭이지 않게

산산조각을 못박아줘

- 문예지 〈시와 세계 가을호〉(2020) 중에서


매달 수 없는 공중, 그 자체를 매달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시인은 어떤 징후를 느낀다. ‘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꿈

’인데 거리는 격렬해지고 ‘나의 사막엔’ 깃발들조차 도착하지 않는다.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 시라면 이 시는 알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세계에 가보려는 심경을 담고 있다. 시인이 기다리는 세계엔 ‘말라가는 구름과 한쪽으로 흘러내리는 표정들’이 있는 건조한 세계이다. 그러나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돌고 있다. 어떤 징후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산산조각을 못박아줘’라고 토로할 만큼 시인은 이미 본 자로서, 세계를 응시하고 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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