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질환 사망률 1위 거식증, 의지로 극복 어려운 이유는?
10~20대 중심으로 거식증 옹호 ‘프로아나’ 번져
저체중으로 인해 환자 약 10% 심정지로 사망 위험
발병 5년 이내에 치료 시작해야 성공 가능성 높아
섭식장애를 앓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섭식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은 거식증과 폭식증이다. 특히 미디어 속 마른 연예인을 선망하는 청소년들의 거식증은 사회적 우려까지 낳고 있다. 거식증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가장 우선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보는 청소년 질환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전체 인구의 약 1% 유병률을 가진 질환으로 보고되고 있다.
■‘프로아나’를 아시나요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 뼈만 남아 있을 정도 마른 몸매를 선망하는 ‘프로아나’가 퍼지고 있다. 우호적이라는 뜻의 ‘프로’(Pro)와 거식(Anorexia)을 뜻하는 ‘아나’의 합성어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들은 SNS에서 은밀하게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기만 하고 뱉기)’ 등 초절식 팁을 공유하고 있다.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Anorexia Nervosa)’이라는 용어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거식증을 가진 사람은 이를 드러내지 않는 특징이 있어 주변에서 흔히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과도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중 거식증이 의심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1년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내원한 환자는 2201명이며, 여성이 1648명으로 약 75%였다. 여성 환자를 연령대로 보면 10대가 400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거식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한 미국 하버드대 의대 앤 베커 교수의 연구가 있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는 1995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집에 TV가 보급돼 있지 않았다. 3년 후인 1998년에 70%가 넘는 집에 TV가 설치됐고, 3년 전과 비교해 구토를 하거나 이상한 섭식 습관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 TV에 나오는 날씬한 사람들을 보면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소 바뀌고 TV에 나오는 사람처럼 날씬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순히 TV나 SNS의 보급이 거식증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날씬함을 강조하는 사회의 요구와 같은 상황이 거식증의 유병률을 높이는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지나치게 마른 몸매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부터 정상 체질량지수(BMI ) 미만의 모델이 런웨이를 할 경우 약 1억 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스페인, 이스라엘에서도 BMI가 18.5 이하인 모델은 무대에 설 수 없다. 영국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서로의 외모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교육하고 있다.
■저절로 낫는 경우 없어 치료 필수
거식증은 체중 증가에 대한 강한 두려움 때문에 음식 섭취량을 현저히 줄이거나 거부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각한 저체중인데도 본인 스스로는 인지하고 못하고 체중 증가를 막는 과도한 행동이 지속적이고 강박적으로 나타난다.
거식증이 위험한 이유는 저체중으로 인해 약 10%의 환자가 심정지로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정신과 질환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사망률이다. 그 외에도 월경을 하지 않거나 쉽게 뼈가 부러지는 골다공증, 반복된 구토로 인한 식도와 치아의 손상, 침샘의 부종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 문정준 정신건강의학과(섭식장애클리닉) 교수는 “거식증은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에 주로 발생하며, 최근에는 남성 환자도 늘고 있지만 여성 환자가 다수를 차지한다”며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치료를 받으러 많이 오는데, 성적이 떨어지고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을 꺼려 대인관계에서 문제를 보인다”고 말했다.
거식증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3가지는 규칙적인 식사와 체중의 회복, 그리고 절식·폭식과 구토와 같은 이상섭식 행동을 멈추는 것이다. 특히 BMI 15 미만인 경우는 입원을 통해서 억지로라도 식사를 시키고 구토를 막는 치료가 꼭 필요하다. 이러한 치료는 집에서 스스로 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거식증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를 해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문정준 교수는 “거식증은 저절로 낫는 경우가 없으며, 발병 5년 이내에서는 치료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5년 이상 지속되면 만성화되는 경향이 강해서 성인이 된 이후로도 거식증 상태로 지낼 가능성이 높다”며 “치료가 늦어질수록 거식증 증상이 습관화되기 때문에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며 조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