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는 한·일 경계 가로지르는 동아시아 열린 공간”
고분군 7곳 세계유산 등재 눈앞
26일 가야학술제전 심포지엄
이질적 문화 접변 일어난 ‘변경’
“가야 통해 자립한 소사회 부활”
7곳 고분군이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가야. 과연 가야는 무엇이었을까. “‘동아시아의 열린 공간’이었고 ‘고대의 변경’이었다.” 가야를 보는 진전된, 그리고 많은 함의를 갖춘 근년의 입장이랄 수 있다. 지난 26일 국립김해박물관 2023 가야학술제전 첫 번째 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열린공간, 가야’에서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가야, 고대의 변경’이라는 기조강연을 했다.
윤 교수는 “가야가 고대의 변경이라는 것은 한국, 일본이라는 일국사를 대체해가는 새로운 입론”이라며 “변경은 이질적인 문화들의 접변이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했다. 결국 가야는 한반도 남부와 일본 규슈를 포괄하는 독특한 고대 지역문화권이었다는 것이다. 좀 더 확장하면 한반도와 일본열도뿐 아니라 중국에 이르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교역으로, 경제적으로 묶어낸 열린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가야는 경남, 경북 일부, 좀 더 확대해 호남 동부까지 아울렀다며 ‘한반도 남부’에 묶어둘 만한 게 아니라 아예 한·일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동아시아의 확대된 변경’이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북쪽의 부여와 흡사하다”며 윤 교수는 “가야와 부여는 이국 문화와 소통·공존했던, 우리 고대사 무대의 극과 극에 존재했던 변경”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항구·포구·오아시스를 아우르는 고대 교역장 최대의 특징은 ‘정치적 중립성’”이라고 했다. <위서> 동이전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가야는 중국군현, 한(韓), 예(濊), 왜에서 온 사절과 교역인들이 내왕하면서, 또는 직접 거주하기도 하면서 원격지 교역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라는 것이다. 뒤섞여 사는 혼종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근대국민국가의 엄격한 국경의식을 대입해서는 안 된다”며 “마치 조선과 일본 막부 사이의 쓰시마와 같다”고 했다.
윤 교수는 새 용어로서, 김해 및 고령의 세력이 만들어냈다는 ‘가야-임나의 길’을 꺼냈다. 그것은 중앙집권화로 나아간 ‘삼국의 길’(고구려 백제 신라)과는 다르다. 소국 각각이 스스로 소사회로 자립해서 강대국 사이의 정치적 완충·중립지대로 교역 활성화를 이끌어낸 ‘호혜·공존의 네트워크’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이 좀 더 필요하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중앙집권화된 국가를 완성한 뒤에도 최초의 소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김해와 고령 정치체는 정치적 성장에 따라, 애초의 소국 이름을 버리고 가야-임나라는 이름을 점차 똑같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김해는 3세기 중반 가야, 5세기 이전 임나를 표방했고, 고령도 5세기 가라(가야), 그 이후 임나를 표방했다는 것이다. 김해와 고령이 다른데 똑같은 이름을 표방한 것은 ‘삼국의 길’과 다르게 ‘동아시아의 열린 공간’에 ‘가야-임나의 길’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가야와 임나, 특히 임나는 하나의 소국 이름이면서 동시에 주변 소국에 대해 일정한 통제력이 작동하는 정치구조나 네트워크 이름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삼국시대론과 사국시대론을 다 같이 비판한다. 첫째 근대역사학의 틀인 ‘삼국시대론’은 가야는 물론 마한 같은 다양한 고대사회의 이질적인 주변 소사회의 시공간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둘째 사국시대론도 ‘소국-연맹-고대국가’라는 서열을 매기면서 결국 가야를 ‘미완의 문명’ ‘가야연맹’으로 고대국가보다 열등한 사회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변경은 6세기 이후 복합적인 국가체에 의해 무너져갔다고 한다. 한반도 남부의 제 세력은 백제와 신라에 의해 소멸돼 갔고, 일본열도 규슈의 이와이 세력은 왜 왕권에 의해 진압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가야에는 가야의 시간이 있다. 이제 가야를 통해 소사회의 부활을 노래할 때가 되었다”며 그 현재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일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신뢰·협력으로 열어놓는 ‘현대의 변경’을 만들어가는 일이 절실하다. ‘고대의 변경’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 한·일 양국 역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음미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일국사를 동아시아사 속에서 해소시키는 새로운 역사 읽기가 가능할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