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인공지능 vs 인간 기자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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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선 콘텐츠센터장

지난해 11월 오픈AI 챗GPT 공개
이용자 질문에 대화식으로 답변

웹에서 자료 채굴하고 통계적 정리
거짓 정보, 여론 조작 가능성 우려

기자들 AI 활용·차별화 고민
콘텐츠 생산 관행에 변화 필요

이 글의 일차적인 목적은 현직 기자로서 주요 이슈에 대한 나 스스로의 정리에 있음을 먼저 밝혀둔다. 또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극단적인 사례를 끌어왔고, 재미를 위해 기계를 의인화(擬人化)했다는 점도 미리 말씀 드린다.

지난해 11월 오픈AI사가 챗GPT를 공개한 이후 AI(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가장 고차원적 게임이라는 인간 바둑이 2016년 알파고에 무너진 지 6년 만이다.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방대한 글이나 책, 논문 등을 빅데이터로 미리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자연어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이다. 마치 사람과 대화(chat)하듯 답을 준다는 것이 혁신적이다. 인쇄술,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인터넷 같이 사회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과 영문 이니셜이 같다는 점이 공교롭다.


지난 3월 나는 이 녀석의 실력을 가늠하고자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 “김마선이라는 이름의 기자에 대해 알려주세요.” 몇 차례 껌뻑인 뒤 내놓은 답변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낯간지러운 대목을 빼면 대강 이렇다.

“김마선은 대한민국의 여성 기자로, 부산일보에서 활동하는 기자 중 한 명입니다.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사를 취재하며 부산일보를 비롯한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그녀의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부산대학교 언론홍보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필자는 여성이 아니고 언론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았다. 스포츠는 담당한 적이 사실상 없고,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활동하지도 않는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의 가르침을 인공지능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까.

기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팩트 취사선택에서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기자는 확인되지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보를 피하는 나름의 안전장치도 있다. ‘반론권’이라는 것인데, 비판 대상에게 해명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사의 팩트를 교차검증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게 변수이긴 하다.

위 답변을 통해 챗봇의 작동방식과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챗GPT는 ‘데이터 마이닝’(자료 채굴)이고 통계적으로 최적화한 정보다. 기자처럼 팩트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웹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고, 없는 것은 통계로 따져 답한다. 그 뛰어남의 이면에는 정보 도용, 거짓 정보, 여론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오픈AI 대표마저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다.

챗GPT가 많이 쓰는 웹데이터 중 3위가 뉴스 분야다.(기자협회보 5월 3일 자) 그만큼 공짜로 뉴스를 쓴다는 뜻이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과제다. 마침 구글도 뉴욕타임스에 3년간 1억 달러를 지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챗봇을 놓고 현대판 ‘러다이트(기계파괴) 운동’을 벌일 수는 없다. 더구나 글 쓰는 입장에서 신예 경쟁자를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던가. 한계를 분명히 알고, 활용을 잘 하면 되는 것이다. 크게 볼 때 챗봇을 도구로 유용하게 쓰는 방법과, 차별화하는 방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글에서 간단한 제목을 뽑고, 관련 자료를 찾는 정도는 이미 언론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문장을 요약하고, 번역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챗봇이 내놓은 내용의 사실관계가 맞는지 검증하는 것은 이용자의 몫이다.

기자들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로봇과의 차별화다. 전문가들은 2026년이 되면 온라인 콘텐츠의 90%를 인공지능이 생성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결론은 자명하다. 챗봇이 쓸 수 없는 기사를 쓰는 것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를 더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콘텐츠 생산과 기자 교육 방식의 변화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차이를 만들까. 신문이 새롭게 들은 것(新聞)이지만 이제 더 열심히 물어야(新問) 한다. 묻지 않는 기자,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모르는 기자는 앞으로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또 ‘머리’(지능)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글을 써야 한다. 산업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Big blur)의 시대에 좁아진 생존 공간을 확장하려면 변해야 한다. 어쩌면 언론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글 마감 직전에 챗GPT에게 다시 물었다. 정확히 똑같은 질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챗봇에게 일종의 반론권을 준 셈이다. “죄송합니다. 저는 김마선이라는 이름의 기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최신 뉴스 기사나 온라인 검색 엔진을 통해 찾아보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 사이 논어를 학습한 것일까. 후생가외(後生可畏)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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