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싼타페 참변’ 1심 이어 항소심도 “급발진 입증 불가”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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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이 현대차 등에 제기한 손배소 기각
1심 “개인적으로 받은 사감정 믿을 수 없어”
실험 영상엔 “보관 소홀·제3자 접근 가능성”
“유족이 (급발진) 입증 책임 다해야”

2016년 8월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발생해 일가족 4명이 숨진 부산 싼타페 사고 당시 차량. 부산일보DB 2016년 8월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발생해 일가족 4명이 숨진 부산 싼타페 사고 당시 차량. 부산일보DB

2016년 8월 일가족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부산 싼타페 참변’에 대해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유족 측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차량과 부품의 제조상 결함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고법 민사5부(부장판사 김주호)는 유가족 측이 차량 제조사인 현대기아차와 부품제조사인 보쉬를 상대로 제기한 1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1심과 마찬가지로 기각한다고 31일 밝혔다.

지난해 1월 1심 재판부는 기각의 주된 근거 중 하나로 “유족이 제시한 감정서는 개인적으로 의뢰해 받은 ‘사감정’ 결과에 불과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족 의뢰로 시행된 모의실험은 “자동차의 고압연료 펌프 커플링 고정 볼트가 풀려 경유가 엔진 내부로 들어갔다”며 “점도가 낮아진 엔진오일이 경유와 함께 연소실로 유입되면서 급발진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명장’이나 대학 교수 등에 의한 실험이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처럼 신뢰할 수 없다는 게 1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싼타페 차량이 사고 직전 교차로에 진입하는 모습이 뒤차 블랙박스에 담겼다. 유족 측은 후방 브레이크등이 켜진 것처럼 보이는 이 영상을 토대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브레이크등이 켜진 상태로 보기 어렵다며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민심 제공. 싼타페 차량이 사고 직전 교차로에 진입하는 모습이 뒤차 블랙박스에 담겼다. 유족 측은 후방 브레이크등이 켜진 것처럼 보이는 이 영상을 토대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브레이크등이 켜진 상태로 보기 어렵다며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민심 제공.

유족은 국과수에 조사를 맡기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당시 국과수는 “급발진 여부를 조사하려면 국과수 자체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현대차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스스로 부검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사고 차량 부품으로 진행한 급발진 실험 영상 또한 재판에서 제대로 인정되지 못했다. 1심 재판부는 “사고 이후 상당 시간이 경과된 이후 촬영된 것이고 보관의 소홀이나 제3자의 접근 등으로 자동차의 현상이 변경됐을 수 있다”고 적시했다. 법원이 증거의 훼손은 물론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한 것이다.

차량 등 각종 제조물을 정상적으로 사용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하면 제조물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알 수 없는 소비자가 인과 관계를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사 측에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제조물의 결함으로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원고(유족)들이 입증 책임을 다해야 하고, 제조물 책임법리에 따라 그 입증 책임이 완화되더라도 책임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당시 참변은 일가족 5명이 탄 싼타페 차량이 남구 감만동 사거리 부근의 내리막길부터 속도를 내 갓길에 주차된 트레일러를 그대로 들이받으면서 일어났다. 운전자를 제외한 아내와 딸, 손자 2명 등 4명이 숨졌다. 블랙박스에는 ‘차가 왜 이래’ ‘아기, 아기, 아기’와 같은 음성이 담겨 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SUV 급발진 의심 사고로 차량 급발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지고 있다. 60대 여성이 SUV 차량에 12살 손자를 태우고 운전하다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해 손자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여성은 지난 23일 열린 첫 공판에서 사랑하는 “손자를 잃고 저만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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