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녹조 로봇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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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주민들은 매년 날씨가 따뜻해지면 걱정이 한 가지 더 생긴다. 낙동강 일대를 파란 조류가 뒤덮는 ‘녹조 라테’ 현상 때문이다. 수중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녹조는 질소(N), 인(P) 등 영양 염류가 빗물에 쓸려 강으로 과다 유입된 상태에서 일조량이 증가하고 수온이 올라가면서 대량 증식하게 된다. 녹조를 구성하는 식물성 플랑크톤 조류 중 남조류 개체수가 증가하면 물속에 용존산소(DO)가 고갈되어 물고기가 집단 폐사해 물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일부 남조류는 대표적인 독성 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란 신경 독소를 분비하여 복통, 간·폐·신경 질환 및 생식 기능 약화를 유발하는 등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정수장에서 고도정수처리한 뒤 부산 수영구 일반 가정으로 공급된 수돗물에서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돼 수돗물 안전성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독성 물질은 수돗물을 끓이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날씨가 더워질수록 “낙동강 수돗물을 정말로 마셔도 되느냐”라는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농지와 함께 공업단지가 많이 분포한 낙동강 중·상류에서 발생하던 녹조가 최근에는 하류 지역인 물금·매리 등 수돗물 취수원까지 퍼지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 정도면 ‘사회적인 재앙’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부산도시공사가 서낙동강 녹조를 줄이기 위해 AI 기반의 ‘녹조 로봇’ 2기를 배치한다고 한다. 가정용 로봇 청소기와 비슷한 녹조 로봇은 물위에 띄워 4중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녹조를 물리적으로 걷어 내는 기계이다. 태양광으로 충전하고 자율 주행을 통한 실시간 수질 측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로봇의 실제 활동 면적은 서낙동강 서쪽 지류 1.5㎞(면적 40만㎡)로 서낙동강 전체(총길이 20㎞·면적 2억 8500㎡)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다. 공단 하·폐수나 농약·비료, 가축 분뇨 등 오염원 해결이 아닌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가 터진 지 30년이 훌쩍 지났다. 생존에 핵심인 안전한 식수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가뜩이나 기후변화로 올여름 사상 유례 없는 폭염이 예보돼 있다. 수십 년간 국가의 의도된 무능과 무대책이 폭염, 고수온과 겹치면서 낙동강에 사상 최악의 녹조 라테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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