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닭발 가로수’ 수난시대, 가지치기 지침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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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육 고려 없이 마구잡이로 잘라
도심 흉물 전락, 체계적 관리 방안 절실

삭막한 도심지 도로의 청량제 구실을 하는 가로수가 지자체의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되레 도심 흉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 시내 한 도로변 가로수의 가지치기 모습. 연합뉴스 삭막한 도심지 도로의 청량제 구실을 하는 가로수가 지자체의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되레 도심 흉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 시내 한 도로변 가로수의 가지치기 모습. 연합뉴스

삭막한 도심지 도로의 청량제 구실을 하는 가로수가 지자체의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해 되레 도심 흉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부산 동구 범일동, 북구 화명동 등 곳곳에는 과도하게 가지가 잘린 가로수들이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 언뜻 나무인지, 기둥인지 알기 어려운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오죽했으면 ‘닭발 가로수’, ‘젓가락 가로수’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나뭇가지와 전선의 접촉, 상가 민원 등에 따른 조치라고 하지만, 나무의 생육은 전혀 개의치 않다 보니 이런 행위가 아무 제한 없이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가로수 죽이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가로수 가지치기를 꼭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도로 전체의 시야를 가리거나 인도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면 가지치기를 피할 도리가 없다. 도로 주변 상가의 많은 민원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 아무런 지침도, 규정도 없다는 점이다. 가지치기를 하는 지자체가 나무의 생육과 상관없이 자의에 따라 전정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부분은 추가 민원 등을 상정해 한 번 자를 때 되도록 많이 자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작업 과정에 조경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기준도, 지침도, 전문가 참여도 없으니 마구잡이 가지치기가 해마다 되풀이된다.

이렇게 가지가 마구잡이로 잘려 나간 가로수가 도심의 아름다운 풍경이 될 리는 만무하다. 또 그런 나무가 잘 자랄 리도 없다. 안 그래도 부산은 전국 광역시 중 도심 녹화율이 낮아 시내가 황량하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아 왔다. 우거진 가로수 조성이 대안이 될 수 있는데도 오히려 관련 정책은 갈수록 뒷걸음치는 모습이 안타깝다. 국제수목관리학회는 성숙한 나무의 가지는 자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잘라도 나뭇잎의 25% 이상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런던, 뉴욕 등 주요 도시는 이미 가로수 조례를 제정해 엄격히 관리한다고 한다. 글로벌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는 부산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의 가로수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가지가 몽땅 잘린 가로수는 부산의 이미지를 갉아먹었으면 먹었지,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시민 정서 측면은 물론이고 부산에 오는 관광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시는 지금이라도 부산 실정에 맞는 자체 지침 마련에 나서야 한다. 환경부가 연내에 관련 지침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이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시가 올해 밝힌 시내 22곳의 도시숲 조성도 이런 지침이 없다면 그저 보여 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로수 정책 부재 도시의 오명을 벗고, 닭발 가로수를 봐야 하는 시민의 고통도 생각한다면 더는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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