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묻지마 범죄’ 수사 경종 울린 ‘돌려차기’ 35년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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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1심보다 구형 15년 더 늘어
피해자 보호·초동 수사 강화 등 계기 돼야

작년 5월 부산 서면에서 한 남성이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돌려차기로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영상 캡처. 작년 5월 부산 서면에서 한 남성이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돌려차기로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영상 캡처.

작년 5월 부산 서면에서 한 남성이 귀가하던 20대 여성을 돌려차기로 폭행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징역 35년을 구형했다. 부산고검은 31일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A 씨(30)에게 징역 35년과 함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및 보호관찰명령 20년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1심 때 구형한 징역 20년보다 15년이 더 늘었는데, 피해 여성의 청바지에서 가해 남성의 DNA가 검출되면서 살인미수에서 강간 살인미수로 혐의가 바뀐 것이 구형에 영향을 미쳤다. 검찰이 중형 구형으로 이런 ‘묻지마 범죄’에 경종을 울리긴 했으나, 이 사건을 되짚어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피고인의 성범죄 혐의를 검찰과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가 생업을 포기한 채 직접 발로 뛰어 밝혀냈다는 점이다. 검찰과 경찰 심지어 1심 법원까지도 피고인의 휴대폰 포렌식 수사와 사건 현장의 CCTV 영상 등 유력한 정황 증거에도 피고인의 성범죄 혐의를 다루지 않았다. 35년 중형 구형의 결정적 계기가 된 DNA 재감정도 피해자의 끈질긴 요청으로 가능했다.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두 차례나 감정한 DNA는 채취 대상물의 오염 등 형식적 감정에 그쳐 재판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결국 피해자가 1년간 자체적으로 수사 자료를 수집한 끝에 겨우 재감정 요청이 받아들여져 성범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었다.

이처럼 피해자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오히려 수사 과정에선 철저히 배제됐다. 가해자 등 사건 관련 정보는 전혀 접할 수 없었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민사소송까지 벌인 뒤에야 겨우 현장 CCTV 영상과 수사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다. 1심 판결 뒤에는 피해자임에도 오히려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더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실질적인 피해자 신변 보호를 위한 수사 기관의 설명은 없었다. 피해자 보호에 관한 우리 사법 체계의 후진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동안 오롯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피해자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공감이 간다.

이번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은 이달 12일 열린다. 선고 형량을 가늠할 순 없지만, 이와 상관없이 이번 사건은 향후 묻지마 범죄에 대한 허술한 수사 관행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20대 피해자의 지적처럼 가해자 등에 대한 피해자의 알 권리가 확실히 보장되는 회복적인 사법 체계가 절실하다. 범죄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불안에 떨어야 하는 현실은 개선되는 게 마땅하다. 꼼꼼한 피해자 보호책 마련과 함께 원할 경우 피해자와 필수 정보 공유는 시도해 볼 만하다. 이에 앞서 경찰의 초동수사 역량 강화는 말할 것도 없다. 수사 기관은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을 꼼꼼히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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