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미래도시의 미래를 생각한다
허동윤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첨단 스마트시티 열망하는 세계
기존 합리주의 계획만으론 한계
사람 중심의 활기찬 공동체 돼야
영화 ‘터미네이터’는 문명의 진보가 오히려 인류를 멸망의 위기에 빠트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84년 겨울, 키보드 대신 타자기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기계와의 전쟁이라니! 상상조차 힘든 섬뜩한 영화였다. 인류 문명의 진보가 인간의 미래를 이롭게 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던 필자는 우리의 도시와 건축으로 인류를 구원하리라 생각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상상을 초월한 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급속히 성장한 도시의 이면을 보면 영화 속 우려가 현실의 숙제로 남겨진 듯하다.
경제가 발전하고 교통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번영한 도시에 모이게 된다. 유엔의 ‘세계 도시화 전망’(World Urbanization Prospect 2018)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 거주하는 세계 인구의 비율은 54%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전체 인구 중 도시에 거주하는 비율이 90%를 넘긴다고 하니 압축 성장만큼이나 급속히 도시화됐다. 벤 윌슨은 그의 저서 〈메트로폴리스〉에서 2050년에는 인류의 3분의 2가 도시에 살 정도로 역사상 최대로 도시로의 인구 이동 현상을 목도할 것이라 했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일자리와 교육, 인프라가 좋은 곳으로 몰린다. 그에 비례해 기후 문제, 환경오염 문제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교통체증이 없고 공기도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어 필요한 것은 쉽게 찾을 수 있는 도시, 즉 미래 스마트시티를 이야기하고, 한쪽에서는 기후위기와 전염병 확산, 그리고 부의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고 우려한다.
영화 속에서만 봤던 미래도시는 실제로 지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 더라인부터 옥사곤, 미국의 텔로사, 일본의 우븐시티가 그렇다. 중국은 500여 개의 스마티시티를 만들겠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웬만한 도시는 모두 스마트시티로 건설하겠다고 한다. 거기다 부산은 북항 앞바다에 세계 최초의 해상도시 ‘오셔닉스 부산’을, 울산은 해저도시를 만들겠다고 한다.
올해 5월 24일, ‘제47차 열린부산·도시건축포럼’은 ‘사이버펑크(Cyberpunk)를 통해 본 스마트시티와 미래도시 전망’을 주제로 진행됐다. 사이버펑크는 컴퓨터 기술에 지배당하는 사회의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하는 SF의 한 장르인데, 기계화된 세상과 암울한 분위기를 그린다. 스마트시티를 통해 유토피아를, 사이버펑크를 통해 디스토피아를 생각하게 한 포럼에서는 ‘영화와 건축-현실의 투사 혹은 역투사’와 ‘UAM(도심항공 모빌리티)으로 그리는 미래 도심 하늘길’에 대한 발제가 있었다.
세계가 미래도시인 스마트시티에 열광하는 이유는 현재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에 따른 탄소 제로 에너지, 교통 문제를 해결할 스마트 교통, 첨단 네트워크 등 그 안에는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첨단 미래도시는 디스토피아를 전제로 한 유토피아라는 우려도 있다. 문제는 지금 구상하고 있는 미래도시가 전체가 아닌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첨단 도시라는 데 있다. 첨단 도시 밖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빈곤은 새로운 도시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포럼을 진행한 차윤석 교수는 모든 것은 한계가 있기에 도시의 생성과 발달 과정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성과 발달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고 전문가의 덫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다. 도시 건축에 있어서는 기존의 관점을 바꿔 전문가, 일반인, 다른 분야의 전문가 등 집단지성을 통한 공론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도시의 다양성과 지역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제인 제이콥스는 “왜 도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복잡하게 조직화된 실체임을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도시계획을 지배하는 과학적 합리주의를 비판했다. 합리적인 계획만으로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존 도시계획의 관행이 당시 미국 대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사람을 떠나게 하는 핵심 요인이라며 도시가 활력을 갖기 위해서는 주민 참여, 공론의 장을 만들어 다양한 도시 활동과 사람의 흐름이 발생하도록 도시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과 마주한 위기는 지금까지 인류가 선택해 온 결과다. 아주 오랫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도시 문명은 계속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발전해 갈 것이다.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가늠하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도시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