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빈 컨테이너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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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혁 부산항만공사 마케팅부장

빈 컨테이너를 해운·항만·물류업계에서는 흔히 ‘공컨’(空컨)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항만에서 공컨을 처리하는 것을 ‘속 빈 강정’에 비유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화물이 가득찬 ‘적컨’(화물이 적재된 컨테이너)이 아니면, 실속이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수출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 무역의 관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비록 공컨이라도 항만이나 지역경제의 입장에서 보자면 연관산업 매출 증대 측면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항만에서 공컨이 처리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가 간 무역 불균형 때문이다. 아시아는 한국과 중국을 비롯해 수출 위주의 국가로 구성되어 있고, 북미와 유럽은 수입 위주의 국가이다. 선사가 아시아에서 북미로 컨테이너 10개를 화물로 채워서 운송하면, 북미에서 아시아로 올 때는 평균 5개밖에 못 채운다. 하지만 선사는 계속해서 아시아에서 물건을 실어 수출하려면 북미에서 화물을 싣지 못한 공컨을 아시아로 가져와야 다시 아시아 화주의 화물을 공컨에 넣어서 수출할 수 있다.

항만 ‘공컨’ 처리에 부정적 시각 많아

수출입 국가 간 무역 불균형의 산물

다음 수출 위해 신속한 회수 더 중요

비어도 부산항·수리업 매출 일으켜

일반인들이 흔히 착각하는 부분은 누가 공컨의 주인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컨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날 때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떤 사람은 운송 트럭 기사 소유로 아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이는 물건을 수출입하는 화주 소유로 알고 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공컨의 주인은 선사이다. 통상 선사는 신조선을 발주할 때 신조선 규모(TEU 기준)의 1.8~2배에 달하는 컨테이너 박스를 같이 발주한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컨테이너 선박의 수송 능력을 합하면 약 2600만TEU인데, 컨테이너 박스는 약 5000만TEU에 달한다. 선사는 선박과 컨테이너 박스, 이 두 개의 값비싼 자산을 활용해 돈을 번다. 그래서 화주가 수출을 위해 공컨을 요청하면, 선사는 화주의 공장으로 자사의 공컨을 보내 주고 자사 선박을 활용해 해상운송을 한다.

북미에서 화물을 싣지 못한 공컨을 아시아로 가져올 때는 오롯이 선사의 비용으로 가져온다. 따라서 선사 입장에서도 공컨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달갑지 않지만, 무역 구조가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수입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이다 보니 공컨이 남아돌고, 이 남아도는 공컨을 아시아 지역에 미리 가져다 놔야 수출 화물 운송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기선 컨테이너 해운은 기본적으로 공컨을 회수해야 하는 ‘회수물류’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선사는 컨테이너를 그냥 빈 공컨으로 아시아에 회송시키지 않고, 아주 낮은 해상운임을 북미 화주에게 제시해 최대한 공컨에 화물을 채운다. 그리고 컨테이너 운송에 따른 운송료, 하역료, 고박료, 검수료, 항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화주한테 실비로 청구한다. 이로 인해 아시아→북미 컨테이너 해상운임이 200만 원이라면, 북미→아시아 해상운임은 통상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글로벌 물류대란 때 북미 지역에서는 공컨이 부족해 미국 농산물 수출기업들이 수출에 차질을 빚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아시아→북미 해상운임이 1000만 원 이상으로 올랐지만, 북미→아시아 운임은 5분의 1도 안 되다 보니 선사 입장에서는 공컨을 미국 내륙 농산물 화주에게 보냈다가 컨테이너 박스 회전율이 떨어지느니 차라리 공컨 그대로 아시아(중국)로 서둘러 회송시켜 버린 게다. 한국과 중국 역시 무역 불균형 때문에 선사는 한국에서 남아도는 공컨을 중국으로 다시 보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과거 부산→중국 해상운임이 저렴한 1달러를 기록한 적도 있다.

이렇듯 정기선 해운에서 공컨 운송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항만의 공컨 처리도 당연하게 생기는 현상이다. 만약 항만에서 공컨을 처리하지 않고 무조건 적컨만 처리한다면, 수출 위주의 국가인 한국도 사실상 수출화물을 실을 공컨이 없어 수출에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선사는 공컨이 달갑지 않지만, 지역경제 입장에선 꼭 그렇지 않다. 공컨도 적컨의 약 70~80% 수준에서 하역료 매출이 발생하고, 공컨의 육상 운송에 따른 운송매출도 일어난다. 그리고 철재로 제작돼 튼튼할 것만 같은 컨테이너 박스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훼손된 컨테이너를 고치는 전문 수리업체 약 50개사가 부산에서 연간 약 750억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서 800여 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특히 일본보다 컨테이너 수리비가 저렴하고, 중국에 비해서는 수리의 질이 높아 한국과 부산은 선사들이 수리를 선호하는 곳으로 꼽힌다. 앞으로 항만이 공컨을 처리한다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이 사라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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