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본 어업협상
논설위원
협상 8년간 중단, 추가 협의도 없어
우리 어선들 일본 EEZ 내 조업 막혀
국내 어획량 크게 줄고 막대한 피해
두 나라 화해 무드로 협상 재개 기대
오염수 방류, 걸림돌 겸 위기로 등장
현 시기 득실 꼼꼼히 따져 대비해야
올 3월 16일 도쿄, 5월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전후해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계기로 급랭한 한일 관계는 안보 공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개선되는 모양새다. 대한상의와 일본상의가 교류를 단절한 지 6년 만인 이달 9일 부산에서 다시 만나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양국 경제협력이 재개되는 움직임도 잇따른다.
이 같은 화해 분위기 속에서 국내 수산업계는 한일 어업협상이 재개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앞서 수산업계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어업협상에 대해 논의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이 문제가 회담 의제에 포함되지 않자 실망하기도 했다. 조속한 어업협상 재개와 타결은 수산업계와 어업인들의 최대 숙원이어서다.
한일 어업협상은 두 나라 어선이 상대방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할 수 있는 척수와 어획량, 기간을 확정하는 일이다. 양국 정부는 1998년 새로 맺은 어업협정에 따라 2015년까지 매년 어기에 맞춰 EEZ 조업 기준을 정하는 협상을 벌여 왔다. 양국 사이 해역이 좁아 국제법이 인정한 200해리(약 370km)를 기준으로 설정된 서로의 EEZ가 겹치는 까닭에 해마다 새 기준을 마련해 온 것이다.
어업협상은 2016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8년간 전면 중단돼 문제가 심각하다. 2015년 협의한 결과의 시효가 끝난 2016년 6월 30일 이후 한일 관계 경색과 일본의 미온적인 태도 탓에 아무런 추가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2011년 후쿠시마원전 폭발사고로 우리 정부가 2013년 일본 8개 현의 수산물을 대상으로 단행한 수입금지 조치에 일본이 강하게 반발한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 EEZ에서의 조업 의존도가 낮아 급할 게 없었던 영향도 컸다.
반면 한국 수산업계는 연안 오염과 어자원 감소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황금어장으로 꼽히던 일본 EEZ 조업권을 잃어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업협상이 장기간 표류하는 동안 수산업계는 EEZ 조업 불가로 어획량이 10만t 이상 줄었고, 누적 피해액은 5000억 원에 달한다. 특히 EEZ 어획고가 전체의 80%나 되는 부산과 EEZ 의존도가 큰 대형선망·기선저인망·채낚기·연승어업의 피해 규모는 막대하다. 선사의 잇단 도산과 어선 감척은 현재 진행형이다. 해양·수산업계가 정부에 어업협상이 시급하다고 줄기차게 지적해 온 이유다.
이같이 위기로 내몰린 수산업계에 초대형 악재까지 닥쳤다. 다음 달로 예정된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투기가 그것이다. 방류될 오염수의 안전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불안감 확산으로 수산물의 소비 위축 현상이 나타나 수산업은 물론 횟집 등 연관 업종마저 울상이다. 이 때문에 한일 관계 호전에 편승해 일본 EEZ 조업으로 돌파구를 찾자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수산업계가 어려움 타개를 위해 어업협상 재개를 거세게 촉구한다면 해양수산부가 이를 피해보상 대책의 일환으로 수용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본이 태도를 바꿔 경제협력을 구실로 먼저 협상 추진을 제안할 개연성이 있다. 바다와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어민들을 달랠 대체 어장을 확보할 목적에서다.
EEZ 내 조업이 절박한 건 맞지만, 과학적으로 안전성이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원전 오염수 방류 초기의 어업협상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오염수를 바다에 대량 투기하는 큰 변수가 생긴 상황에서 한일 어업협상 타결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협상 재개 논의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만일 우리 어선이 일본 EEZ에 입어해 잡은 물고기가 국산으로 유통되더라도 안전관리 문제가 불거지거나 일본 해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외면받을 게 분명하다.
어업협상이 재개될 경우 일본은 협의 과정에서 이익 극대화를 위해 예전에 비해 더 깐깐하고 무리한 주장을 펼칠 공산이 크다. EEZ 조업을 허용하는 대가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폐지부터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독도 영유권 주장에 유리한 내용을 관철하려는 모습 역시 예상된다. 이는 지난 3월 일본 초등교과서가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시한 데서 알 수 있다.
정부는 언제든 어업협상 카드가 현안으로 등장할 것에 대비해 수산업계와 허심탄회하게 머리를 맞대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주고받을지 그리고 적게 주고 많이 받아 내는 전략을 고심하며 협상 재개의 득실을 꼼꼼히 따져 놓고 있어야 하겠다. 일본이 우리보다 협상력이 낫고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 양국 간 교섭에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이 좋은 무기가 될 듯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