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수변공원 금주령’ 최선이었을까
쓰레기·고성방가 등 무질서 몸살
7월부터 음주 시 과태료 5만 원
밀어붙이기식 정책 마찰 우려도
바코드 인식 사전 예약 받으면
입장객 관리로 과잉 관광 막아
젊음 발산할 해방구 열어 둬야
사회봉사 80시간, 제재금 500만 원, 소속팀 1군 명단 제외. 국가대표팀에서 10년 넘게 뛴,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 김광현이 이 같은 망신을 당한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지난 3월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회 기간 유흥업소를 찾아 심야 음주를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다. 음주 파문이 어디 이번에 야구 종목뿐이랴. 2007년 아시안컵축구대회 기간에 2002한일월드컵 4강의 영웅 이운재를 비롯해 이동국 등의 음주 사실이 밝혀졌다. 이운재는 울면서 사과 기자회견을 했지만 국가대표 자격 정지 1년 징계를 받았다. 술은 폭행, 강도, 살인 등 강력 사건을 일으키는 만악의 근원. 그놈의 술을 아예 못 마시게 하면 어떨까.
조선 왕조는 건국 직후부터 금주령을 내려 술을 금지했지만 실패했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조선의 술 문화를 들여다본 〈조선 왕들, 금주령을 내리다〉에는 음주로 인해서 생긴 구체적인 사건들이 빼곡하게 등장한다. 무엄하게도 옥좌에 올라간 관리, 어명을 깜빡해 경을 친 내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죽은 재상 등 사연이 기가 막힌다. 정인지는 임금을 '너'라고 불러서, 무신 어유소는 궁녀를 희롱하면서 술을 따르라고 해서 난리가 났다. 이게 다 술 때문이었다. 조선의 조정에서는 수시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힘 있는 자들은 법을 무시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단속되는 상황이 줄곧 지속되었다.
부산의 민락수변공원이 2주 뒤인 7월부터 금주 구역으로 바뀐다고 한다. 오죽하면 ‘술변공원’이나 ‘술판공원’이라는 오명으로 불릴까. 수변공원은 여름철마다 쓰레기 투기, 취객의 고성방가 등 무질서로 몸살을 앓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근사한 광안대교 야경을 보면서, 인근 회센터에서 저렴하게 회를 사서 먹고 마실 수 있어 전국의 젊은이들이 너무 몰려든 탓이었다. 그 결과 강성태 수영구청장이 지난해부터 여러 차례 수변공원 금주 구역 추진 의사를 밝히고, 수영구의회가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수변공원에서 음주 적발 시 과태료 5만 원 부과 조치는 특히나 주민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수변공원은 한 해 90만 명이 찾는 소위 ‘핫플’이다. 임박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안 그래도 횟집마다 손님이 격감했는데, 내달부터 수변공원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하면 민락회센터에 피해가 막심하지 않을까. 뿌리내린 음주 문화가 바뀌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금주 정책이 과연 큰 마찰 없이 안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야심한 수변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음주를 어떻게 단속하겠다는 말인지.
사람들이 지금처럼 술병을 보이도록 꺼내 놓고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생수나 음료수병에 술을 넣어서 마시는 경우엔 어떻게 하나. 단속 공무원이 “제가 직접 마셔 보겠습니다” 혹은 음주측정기를 대고 “더 세게 불어 보세요”라고 할까. 혹시 그 옛날 학창 시절처럼 소지품 검사? 단속 공무원은 힘들고, 관광객은 짜증 나는 상황이 벌어질 게 불 보듯 하다. 밀어붙이기식 금주령보다는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한 공론화 작업을 거치고, 각 분야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서 나온 결론에 맡기면 좋지 않았을까.
수용 한계를 초과해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오는 ‘오버투어리즘’ 때문에 생긴 수변공원의 문제는 일일 입장객 수를 조절하면 해결할 수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등 유명 관광지도 일일 입장 관광객 수 초과 시에는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관광 전문가인 왕병구 전 부산관광공사 경영전략실장은 “ICT 기술을 활용한 바코드 인식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입장객 숫자를 적절하게 관리하면 된다. 사전에 이용 방침에 동의하고도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는 페널티를 주는 식으로 하면 수변공원의 과잉 관광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라며 아쉬워했다.
수변공원에서 음주 좀 못하게 해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년 이상 세대들은 별 타격이 없다. 하지만 돈 없는 청춘들은 다르다. 술 먹지 마세요,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시끄럽게 떠들지 마세요, 다음 달부터 웬만하면 오지 마세요…. 청년들은 원룸에만 틀어박혀 있으란 뜻인지.
문제를 줄여 나가면 되는 것이지, 조선 시대에도 실패한 금주령을 내리는 방식은 꼰대스러워 보인다. 물론 상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대만의 컨딩야시장에서는 구매한 곳과 무관하게 음식 쓰레기를 어느 가게에서나 다 받아 준다고 한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만 뭐라고 할 게 아니다. 어디서도 받아 주지 않으니 버리고 간다. 이해 당사자인 상인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수변공원 쓰레기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했다. 부산에서의 경험에 따라 부산 관광의 미래, 부산의 미래가 달라진다. 뭐든 없애기는 쉽지만, 새로 만들기는 어렵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