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 밀면집은 식초를 넣을까? 내호냉면 4대 사장 유재우 [부산피디아 WHO(後)]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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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동서 70년 지킨 백년가게
부산 최초로 밀면 만들어
4대째 가업 잇는 유재우 씨
“잊히지 않는 노포 되고파”

부산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밀면은 비교적 근현대인 한국전쟁 때 만들어졌다. 함흥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농마국수를 ‘함흥식 냉면’으로 팔았는데, 여기에 1950년대 미군이 값싸게 푼 밀가루로 대신 면을 만들고 자극적인 양념을 올렸다. 이런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백 년 가게가 있다. 바로 흥남에서 30년, 부산 남구 우암동에서 70년 넘게 자리를 지킨 ‘내호냉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내호냉면 대표 유재우(48) 씨를 만났다.


내호냉면 4대 사장 유재우 씨.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내호냉면 4대 사장 유재우 씨. 정수원 PD bluesky@busan.com

■ 백년가게의 시작

유 씨는 1대 창업주인 증조할머니(이영순)와 2대 할머니(정한금), 그리고 3대인 모친(이춘복)을 거쳐 2017년 가게를 물려받았다. 일찍이 20대 중반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일을 배웠으며 20년 넘게 이 일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그는 가족에게 들었던 내호냉면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했다.

“흥남부두 앞 내호시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1919년 ‘동춘면옥’이라는 가게를 열고 증조할머니(1대)와 친할머니(2대) 두 모녀가 함께 장사하셨습니다. 150~200평 정도로 규모가 꽤 컸다고 합니다. 여기서 함흥냉면을 당시 부두에 오가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내호냉면의 시작인 ‘동춘면옥’은 흥남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모든 것을 놔둔 채 부산으로 피란을 떠나야 했다. 한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가까이 북진했지만, 중공군이 개입하며 급하게 퇴각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바로 ‘1·4 후퇴’다. 창업주 가족도 10만 인파에 섞여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에 내려왔다.

“그때 두 살 갓난 배기였던 아버지를 등에 업고 할머니와 친척들이 다 같이 피란을 왔습니다. 처음에는 부산에 자리가 없다고 거제도에 내려줬대요. 거제도에서 국제시장으로 와서 눈깔사탕을 팔다가, 지금 있는 남구 우암동에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에서 사과 담는 나무 궤짝을 테이블로 놓고 냉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판 건 함흥냉면이었다. 원래 함흥에서는 사람들이 ‘농마국수’라고 불렀다. 농마는 북한말로 ‘녹말’을 뜻한다. 메밀을 쓰는 재료로 하는 평양냉면과 달리 감자전분을 재료로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통에 감자전분은 귀했고, 대신 고구마전분을 넣은 함흥냉면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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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로 밀면을 만들다

그러던 중 1950년대 미국에서 자국 잉여물을 원조하는 사업을 확대하면서 국내에 밀가루가 값싸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냉면을 팔던 가게 중 메밀이나 고구마 전분 대신 밀가루를 넣은 ‘밀면’을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내호냉면은 그중 가장 먼저 밀면을 만든 곳이다.

“미국에서 온 밀가루가 보급품으로 풀리면서 밀가룻값이 내려갔습니다. 그러자 밀가루를 가져와서 면만 뽑아달라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전분으로 만든 냉면을 사 먹기엔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 값싼 밀가루를 사 와 면만 뽑아달라는 것이었죠. 나중에는 아예 할머니가 ‘밀냉면’이라고 따로 팔았는데 이걸 먹어본 사람들이 점차 ‘밀면’이라고 줄여 불렀습니다.”

밀면이라고 밀가루만 쓰는 것은 아니었다. 밀가루 70%, 고구마 전분 30% 정도를 섞었다. 밀가루만 100% 쓰면 워낙 밀가루 냄새가 나는 데다 식감도 툭툭 끊어지기 때문이다. 또, 밀가루만 넣은 면은 잘 퍼지기 때문에 추가 재료를 넣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면의 색깔과 식감이 모두 상해버린다는 게 유 씨의 설명이다.

“우리 가게는 소 힘줄과 사골 잡뼈, 마늘, 생강, 간장, 소금 그리고 약간의 조미료를 한번 빠르게 끓입니다. 그리고 바로 퍼내서 국물을 맑게 유지합니다. 양념장도 파, 마늘, 고춧가루를 섞은 뒤 이틀 정도 숙성하고, 밀면 반죽도 밀가루 70%, 고구마 전분 30% 비율을 지킵니다.”

내호냉면의 재료에 관해 설명하는 유 씨의 말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가게가 최고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 씨는 “육수에 한약재를 넣거나 육전에 고명을 넣는 등 각기 다른 밀면이 있다. 모두가 자기 개성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의 우열은 가릴 수 없다. 모든 밀면의 모습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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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가게 안에는 ‘밀면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혀있다. 밀면이 나오면 면을 자르지 말고, 식초나 겨자는 넣지 않은 채 밀면을 먹저 먹는다. 그리고 나서 기호에 맞게 식초나 겨자를 넣고 찬으로 나온 무채를 곁들여 먹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뜻밖에 유 씨는 ‘내 취향대로 먹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게에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 붙여 놓기는 했는데 취향대로 먹는 게 가장 낫습니다. 참고로 저는 겨자나 식초를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끝까지 먹습니다. 그래야 본연의 육수 맛을 잘 느낄 수 있거든요. 식초나 겨자 이런게 들어갈 수록 간이 세지기 때문에 점점 원래 육수 맛에서 벗어납니다. 우리 가게는 살얼음을 쓰지 않는데, 같은 이유입니다. 얼음을 쓰면 시원하긴 한데 혀가 얼어서 맛을 잘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맛에는 정답이 없고 다들 취향이 있으니 식초나 겨자는 적당히 넣으시되 적어도 처음 한 입은 그냥 육수를 드셔보라고 권합니다.”



■ 잊히지 않는 노포로

내호냉면은 현재 같은 자리를 70년 넘게 지키고 있다. 1대 사장이 “(육수를 끓이는)솥을 옮기지 마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은 유명하다. 가게 자리를 지키라는 장인의 철학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또 다른 지점이 있다고 유 씨는 고백했다.

“굴뚝이나 솥을 옮기지 말라는 유언 때문에 같은 자리를 지켜온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사실 원래 할머니, 할아버지는 전쟁통에 내려왔지만 이북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겁니다. 이북에서 할아버지가 목재소를 크게 운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섣불리 이곳에서 가게를 옮기시지 않았던 겁니다.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고향을 절절히 그리워하셨습니다.”

실제로 내호냉면 가게에는 2대 사장 정한금 씨의 남편인 유복연 씨가 함경도에 있는 고향 마을을 그린 지도와 헤어진 가족 이름을 적은 액자가 걸려있었다. 지도와 글자에는 고향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이 담겼다.

밀면을 최초로 만든 부산의 백 년 가게. 그 무게답게 여전히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유 씨는 더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가만히 있는 노포는 잊힌다’라고 하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요즘은 돈 주고도 하지 못하는 게 스토리텔링입니다. 하지만 내호냉면은 함흥에서부터 내려온, 밀면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밀면으로 주목받았지만 원래 만들던 함흥식 비빔냉면과 온면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메밀로 만든 냉면으로 온면을 만들면 면이 붇지도 않고 탱탱해서 정말 맛있거든요. 내호냉면의 이름을 지키면서, 원래 이름인 ‘동춘면옥’을 살려 함흥식 비빔냉면과 온면을 새로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노포는 잊힌다고 생각합니다. 4대째 내려오는 전통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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