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재민 고통 뒷전 ‘수해 정쟁’ 열 올리는 정치권
말로만 “재난 수습에 총력” 외쳐
여야, 한마음으로 전력투구해야
극한 호우로 인한 ‘역대급 수해’에도 잇속을 노리며 다투는 정치권의 모습이 참으로 눈꼴사납다. 잠시 동안은 피해 복구가 먼저라며 서로 정쟁을 자제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다. 17일 예정됐던 국회 상임위원회 일정을 취소하고, 여야 지도부가 수해 현장을 찾아 재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국민의힘은 당을 비상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고, 더불어민주당도 초당적 협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 약속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무색해졌다. 여야가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을 벌이며 상대를 비난하고 나선 탓이다. 수재민의 고통 따위는 뒷전인 그 행태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은 예의 ‘전(前)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18일 최고위원회에서 김기현 대표가 ‘물 관리 환경부 일원화’와 ‘4대강 보 해체’를 이번 수해의 원인으로 거론하고,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이 태양광 설비처럼 인위적으로 조성된 산지에서 피해가 컸다고 지적한 게 그렇다. 물 관리 일원화나 4대강 보 해체, 태양광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주도해 실시했다. 사실상 문 정부의 정책 실패가 이번 수해를 초래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민의힘의 이런 비판이 전적으로 온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국정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방기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극한 호우로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피해에 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최종윤 의원은 지난해 집중호우 당시 윤 대통령이 전화로 재난 대응을 지시한 이른바 ‘폰트롤타워’ 논란까지 소환하며 비난 강도를 높였다. 윤준병 의원은 ‘재난 감수성 제로’ 운운하며 이태원 참사까지 거론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국정과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비상식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지적은 비판보다 비하에 가까운 느낌이라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온 나라가 물난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명 피해도 크다. 무엇보다 극한 호우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정쟁에 열 올리는 정치권이 국민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국가적 재난 앞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당을 이끄는 인사들이 재난 현장에 우르르 달려가서 “총력 지원”이니 “비상체제 전환”이니 “초당적 협력”이니 아무리 외쳐 봐야 말에 그쳐서는 만사휴의다. 호우가 그친다 하더라도 수해 원인을 파악하고 피해 복구와 지원책을 마련하는 등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여야가 한마음으로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국가적 재난에서만이라도 여야가 협치하는 모습을 국민은 보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