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양·에스엠랩 동맹, 동남권 ‘이차전지’ 시대 연다
부산·울산 선도기업 전략적 제휴
1050억 투자와 핵심기술 조달 등
상호 협력으로 배터리 시장 주도
타 지역 대항마로 경쟁력 기대감
부산 ‘금양’의 류광지와 울산 ‘에스엠랩’의 조재필, 국내 이차전지 업계에서 가장 핫한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의 완성 이차전지 제조업체인 금양과 울산의 양극재 개발업체 에스엠랩 간의 전략적 투자가 성사됐다. 지난 20일 금양은 에스엠랩에 105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다음 날인 21일 이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했다.
류 회장은 이번 투자로 국내 최고 수준의 양극재 기술을 보유한 에스엠랩 지분을 확보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금양은 최근 대규모 자사주 처분을 실행해 현금을 비축했는데, 이를 활용해 에스엠랩의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극재는 음극재와 분리막, 전해질 등과 함께 이차전지의 4대 구성 요소다. 배터리의 전압과 평균 용량 등 성능 전반을 좌우하는 만큼 핵심기술로 꼽힌다. 배터리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것도 바로 이 양극재다.
에스엠랩의 조 대표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를 겸임 중이다. 이차전지, 특히 양극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석학이다.
울산과학기술원 내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에스엠랩은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다 예비심사 과정에서 공장 증설 자금 등의 문제로 이를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에스엠랩과 조 대표는 이번에 금양과 손을 잡으면서 상장에 재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증설 자금을 확보한 데다 금양이 주주사이면서 납품처가 되면서 매출 실적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류 회장과 조 대표가 공동목적으로 37% 지분을 보유해 의결권도 같이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지역 내 알짜 기업을 호시탐탐 노리는 배터리 계열 대기업과 사모펀드에 대항해 탄탄한 경영권 방어도 가능해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파죽지세로 사세를 불려 가던 금양도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금양은 오는 2026년까지 기장군에 연 생산량 3억 셀 규모의 이차전지 공장을 짓는다. 배터리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양극재 납품업체를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에스엠랩으로 못 박았고, 자매회사의 기술진 수혈까지도 가능하게 됐다.
금양 측 관계자는 “에스엠랩 투자로 핵심 부품인 양극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원가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에스엠랩도 금양이 공급하는 양극재 재료를 싸게 납품받을 수 있게 됐으니 윈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차전지 업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부산과 울산의 두 기업이 전격적으로 동맹을 맺으면서 지역 경제계에서는 이들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산은 지난주 정부의 이차전지 첨단특화산업특구에서 제외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이차전지 특구 지정은 포항시와 새만금의 몫이 됐다.
그러나 금양과 에스엠랩의 동맹으로 정부 지정과 무관하게 이차전지 클러스터 경쟁에 뛰어들 기반이 마련됐다. 포항시가 에코프로를 중심으로 국내 이차전지 소재 기업을 싹쓸이하듯 모셔가고 있지만, 기장군에서도 금양과 에스엠랩이 자생적인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실제로 울산에 위치한 에스엠랩은 추가 공장을 금양이 터를 잡을 예정인 기장군 오리산단 인근에 짓는 것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금양은 콩고에 이어 몽골에서도 리튬광산 지분 인수를 추진해 양극재 소재가 되는 리튬 물량 확보에 나선 상태다. 확보한 리튬 물량을 에스엠랩으로 보내 양극재로 제조하고, 그 물량을 다시 금양이 소화해 이차전지 완제품을 내고 폐배터리까지 리사이클링하는 밸류체인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에스엠랩 관계자는 “금양과 투자로 묶이면서 경영권과 기술력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이차전지 기술이 보안이 중요한데 법인 대 법인으로는 어려웠던 부분이 전략적으로 공유가 되고, 지리적으로 한 덩이로 묶이게 된다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