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는 되고 주의보는 안 되고… 행안부 ‘이상한 재난 문자 발송 기준’ 시민은 어쩌라고
지침 어겨 누적되면 발송 제재
지자체 “탄력적 정보 전달 막아”
부산시 등 ‘현실 맞게 개선’ 건의
기습 폭우 등으로 재난 문자 발송이 급격히 많아지지만, 지자체는 도로 통제 해제나 경보 완화 등을 별도로 통보하는 것을 꺼린다. 재난 문자 급증에 따른 민원을 우려한 행정안전부의 지침 때문인데, 정작 국민 사이에선 정보 부족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르면 차도를 통제할 때에는 재난 문자를 발송할 수 있지만, 해제한 사실을 재난 문자로 알리는 것은 재난관리평가 시 ‘미흡’ 사례로 감점 사항이다. 태풍이나 호우 등의 경고 문자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재난 등급인 ‘경보’일 경우에만 보낼 수 있다. 오전 6~10시, 오후 4~9시로 지정된 출퇴근 시간엔 ‘주의보’일 경우에도 발송할 수 있지만, 그 외엔 ‘경보’일 경우에만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한 것이 행안부의 재난 문자 발송 기준이다.
행안부 지침을 어길 경우 제재를 받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재난 문자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 지자체 입장이다. 부산시 재난상황실 관계자는 “미흡 사례가 누적되면 지자체의 문자 발송 권한까지 회수하겠다는 상황이다 보니 재난 문자 발송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시민 편의와 안전을 우선시하고 싶지만, 실제 재난 문자 발송량은 요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행안부 방침에 불만을 제기하는 국민도 많다. 특히 장마철 교통 통제 관련 정보 전달이 늦어지면 직접적인 불편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형은(30·부산 강서구 명지동) 씨는 “도로 통제 문자는 많이 받는다. 해제 여부는 다 알려주는 게 아닌 것 같다”면서 “어느 사이트에 들어가야 상황을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 통제가 해제된 것을 몰라 돌아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재난 상황이 급박할 경우 정보 부족은 불편을 넘어 안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는 ‘주의보’ 단계여도 관련 문의가 많거나 위급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감점을 감수하고 재난 문자를 발송한다. 시에 따르면 지난해 태풍 ‘힌남노’ 때 이로 인한 부적절 송출 사례는 37건에 달했다. 시 자연재난과 관계자는 “주의보일 때나 소나기가 올 때에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강서구 거가대교 같은 경우 도로 통제 해제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많은 시민이 창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감점을 받더라도 해제 문자를 보낸다”고 말했다.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재난 문자 관리를 위해서는 행안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현장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시는 행안부에 제도 개선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구의 경우 다음 달 초부터 구청 누리집에 지하차도 실시간 통제·해제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행안부는 이에 대해 재난 문자 남발과 관련된 민원이 많아 현재 지침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문자 발송량이 늘어나면 국민 피로감도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난 문자는 긴급한 상황에만 발송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출퇴근 시간엔 이동이 많기 때문에 ‘주의보’라도 문자를 보내는 것을 허용하지만, 평상시엔 과도한 문자 발송을 방지하기 위해 ‘경보’일 때에만 허용한다”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