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통일, 아직도 우리의 소원일까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국민 절반 이상 ‘왕래 자유로운 2국가’ 선호
“통일 필요” 말하지만 실현 여부엔 회의적
통일에 대한 강박 이젠 진지하게 고민해야


■“통일 관련 국민 인식 변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지난 13일 ‘국민 통일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올해 6월 9~11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였는데, 그 결과가 꽤 흥미롭다. 핵심 질문은 ‘남한과 북한의 미래상 중 어떤 게 가장 바람직하겠냐’는 것이었다.

여러 선택사항 중 가장 많은 응답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였다. 응답자의 52%가 이를 지목했다. 민간인 교류가 거의 불가능한 ‘지금과 같은 2국가’를 택한 사람도 7.9%였다. ‘1국가 2체제’를 선택한 사람은 9.8%였다. 그에 비해 ‘단일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28.5%에 그쳤다. 요컨대 단일국가로의 통일보다는 남과 북이 별도의 국체를 유지하자는 응답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73.4%가 동의한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답은 25.4%에 그쳤다. 국민 대다수는 남북의 통일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의 통일에는 회의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는데, 도대체 그 무엇이 있어 이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됐을까.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한 후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 합의서에 서명한 후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역대 정권의 통일론은 허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던 세대는 중·노년이 된 지 오래다. 분단 이전 ‘하나의 국가’를 경험한 이들 중 많은 이가 유명을 달리했고, 의식적으로든 의무적으로든 남북은 하나라는 생각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옅어졌다. 지금 ‘MZ’로 불리는 세대에게 통일이 갖는 의미가 기성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형편에 통일에 대해 헌법적 가치(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고 명시)니 국시(國是)니 아무리 강조해도 듣는 이에 따라서는 비현실적인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의 역대 정권에서 진행된 통일 논의 자체가 가식이었다고 의심하는 이도 많다. 겉으로만 통일을 외쳤지 속으로는 정권 유지를 위해 분단 현실의 고착화를 도모하거나 강화하지 않았냐는 의심이다. 통일의 구호가 권력의 쟁취나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소비됐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심이 전적으로 허황하다고만은 볼 수 없을 듯하다. 분단 직후 남은 ‘수복’ 북은 ‘해방’을 기치로 내걸고 각각 통일을 주창했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벌일 정도로 통일에 모든 것을 걸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당시 극심한 냉전의 국제질서에 편승해 자기들만의 권력 체계를 공고히 했을 뿐이었다. 이후 국제질서가 탈냉전 쪽으로 흐르자 유화적인 방안이 쏟아졌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허상에 그쳤다. 박정희 정권의 ‘7.4 남북공동성명’, 전두환 정권의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노태우 정권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김영삼 정권의 ‘3단계 통일방안’, 김대중 정권의 ‘6·15 남북공동선언’, 노무현 정권의 ‘10·4 선언’ 때마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이뤄질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뒤를 이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 때도 통일이라는 지향점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열린 납북자, 북한 억류자, 국군포로 관련 단체 대표 및 억류자 가족과의 면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열린 납북자, 북한 억류자, 국군포로 관련 단체 대표 및 억류자 가족과의 면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대 인정하지 않는 남과 북

사정은 근래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이는 지난 3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윤석열 정부는 종전선언을 절대로 추진하지 않는다”고 밝힌 데서 엿볼 수 있다. 종전선언은 평화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전체제를 종식시킴으로써 남북간 교류의 물꼬를 공식적으로 트자는 의미인데, 김 장관은 적극 거부했다. 이는 김 장관 개인의 의지에 그치지 않는다. 김 장관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반국가 세력들이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비난했다.

김 장관이나 윤 대통령 모두 겉으로는 통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 장관은 과거 북한 체제 붕괴와 한반도 핵무장을 주장했던 인물이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고집한다. 두 사람에게 지금의 북한 체제는 대화 상대가 아니라 깨부숴야 하는 악의 축이다.

북의 김정은 정권도 그런 측면에선 다르지 않다. 남과의 대화는 단절했고, 습관처럼 되뇌던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도 사라진 지 오래다. 그뿐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 등 무력 도발을 반복하며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결국 남이나 북이나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면서도 정작 발걸음은 통일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6월 28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 해치는 통일은 거부한다?

국민 절반 이상이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를 남북의 가장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꼽았음은 이런 사정들을 고려할 경우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해진다. 현재 전혀 다른 국체로 있는 남과 북을 억지로 하나의 국체로 합치는 데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한편, 나아가 이제는 통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지난 70여 년 간 이어진 갖가지 통일론은 지금껏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통일은커녕 하늘에선 핵미사일이, 바다에선 핵항모가 등장해 서로를 괴멸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일의 실효성과 실현성에 의문을 갖는 게 당연하고, 그래서 대다수 국민은 “차라리 따로 살자. 대신 서로 인사는 하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의 역대 정권이 ‘강요’했을 수도 있는 통일 논의, 특히 평화를 해치는 통일 논의는 거부한다는 집단 의사 표현일 수도 있다.

죽어도 함께할 것인가 아니면 사이좋게 따로 살 것인가, 지금 우리 민족에게 거대한 화두가 던져져 있는 셈이다. 참고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같은 설문에서 북한이 ‘적대·경계 대상’이라는 응답은 42.1%였고 ‘협력·지원 대상’이라는 응답은 47.1%였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