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이전’ 윤 대통령 이념 강조 속 여권 찬성 기류
한덕수 “이전 맞다는 게 정부 생각”
국힘 “공산당 전력… 육사 부적절”
여권 내 반대 주장 비윤계로 축소
민주 “역사 지우는 매국 행위” 반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과 관련, 여권이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모습이다. 흉상 이전이 군 내부 판단이라고 여겨졌던 당초에는 여권 내 반대 여론이 적지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새 ‘공산전체주의’를 지목하며 “이념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이 기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매카시(공산주의 마녀사냥에 앞장선 미국 전 상원의원)가 환생한 것이냐”며 반발 수위를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출석,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흉상 이전이 맞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육사에서 사관학교 정체성이나 생도 교육에 부합하도록 교내 기념물 재정비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타당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과정에서 반드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우리 헌법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흉상 관리의 직접 소관기관인 육사와 국방부가 아닌 행정부 차원의 입장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국민의힘에서도 찬성 목소리가 커졌다.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은 전날 기자들과 만나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자유시 사건 논란 등을 언급하면서 “육사에 세울 때도 육사 교수들이 굉장히 안 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분을 육사에 모신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도 “육사는 앞으로 북한군과 싸워야 할 정체성 뚜렷하고 주적 개념이 뚜렷한 사람을 키우는 곳인데, 일부러 육사에 (흉상을) 둬야 하느냐”며 “그 분이 입은 군복 자체가 소련군 군복”이라고 가세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김병민 최고위원 등으로 이어지던 반대 주장은 이준석 전 대표와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등 비윤(비윤석열)계의 목소리로 축소됐다.
대통령실은 전날 “윤 대통령은 이 문제(흉상 이전)와 관련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지난 28일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 29일 민주평통자문회의 간부들과의 대화에서 공산전체주의에 대항한 이념 무장을 강조한 것 자체가 흉상 이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드러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에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에서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논란이 총선을 앞두고 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부 불만도 감지된다. 여권 관계자는 “중도층 공략에 상당한 악재다. 수도권 선거가 걱정”이라며 “윤 대통령의 ‘독주’ 이미지가 굳어진 것도 여권 지지율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전남 무안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방부와 보훈처가 나서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버리는 만행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것이 매국 행위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며 “박정희 전 대통령도 한때 남로당원이었는데 전국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흉상도 다 철거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과 이회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이종걸 전 의원은 이날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대한고려인협회, 카자흐스탄 독립운동가후손 청년회 등 시민단체들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혼신의 힘을 다해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김일성식 빨치산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국방부의 무도한 작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전 검토 철회를 요구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