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울경 공공기관 있으나 마나 '장애인 의무 고용'
10곳 중 4곳 채용 대신 부담금 납부
예산 삭감·경영 평가 제도 마련해야
부울경 지역의 공공기관 10곳 중 4곳이 법으로 명시된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공공기관이 정부가 도입한 장애인 의무 고용을 공공연히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울경 42곳 공공기관 중 38%인 16곳이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를 이행하지 않고 부담금만 내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장애인 일자리 제공 대신 고용 부담금만 납부하는 행태가 점점 고착화되는 현상이다. 부산대병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국방기술품질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해양진흥공사, (재)APEC기후센터 등 7곳은 5년 연속으로 장애인 채용 대신 부담금만 납부했다. 한마디로 공공기관이 장애인 고용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새다.
심각한 문제는 이들 공공기관이 공공연하게 법을 어기고 ‘고용 부담금만 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2008년부터 고용 의무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으면 부담금을 징수한다. 이 제도의 취지는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데 있다.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야 할 국가 공공기관이 ‘세금으로 고용 부담금만 내면 된다’라는 안이한 인식으로 법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래서야 민간 부문이 장애인 의무 고용을 제대로 이행하길 바랄 수 있겠나. 장애인 고용 대신에 부담금으로 때우면 된다는 잘못된 관행부터 서둘러 바로잡아야 한다.
공공기관의 장애인 의무 고용 위반은 단순한 법 위반에 그치지 않고, 국가 기관이 차별과 인권 침해를 조장한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해 직업 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장애인이 채우기 힘든 채용 조건을 내걸고, “뽑으려 해도 지원자가 없다”면서 법 취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 자체가 부당한 차별이자 인권 침해이다. 우리가 사는 부울경 지역이 차별 없는 인간 존중의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면 공공기관부터 달라져야 한다. 누구라도 차별 없이 일자리를 갖고,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에게 고용이란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 통합에 이바지하는 수단이다. 일자리가 장애인 복지의 기본인 까닭이다. 헌법에 명시된 장애인 보호 의무를 저버리며, 법을 예사로 위반하는 공공기관의 범법 행위를 이제부터라도 개선해야 한다. 장애인 의무 고용 불이행에 대해서는 예산 삭감과 재정지원·경영평가 벌칙 기준 마련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부담금도 세금이 아니라 기관 인건비에서 갹출하는 등 자체 조달하는 방안도 도입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하기를 바란다. 장애인 일자리 확충을 위한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