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준위 특별법 처리, 더 미루면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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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셧다운 위기에도 법안 제정 하세월
기존 원전 영구 방폐장화 우려만 높아져

영구 방폐장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논의가 또 무산됐다. 사진은 포화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는 기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산일보DB 영구 방폐장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논의가 또 무산됐다. 사진은 포화 시기가 가까워 오고 있는 기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부산일보DB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법안 심사에 또 제동이 걸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0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특별법을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회의 자체가 취소됐다. 산자위 법안소위에서만 벌써 11번째 공전인데 사실상 이번 21대 국회에서 특별법 처리가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법안소위의 다음 논의는 11월에나 가능한데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친원전·탈원전 공방이 더 거세져 법안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기 때문이다.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도 포화 상태가 가까워 오고 있는데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안이 폐기 수순으로 갈 경우 원전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가 발의한 3개의 고준위 특별법안이 합의점을 찾지 못 하고 계류 중이다. 특별법은 고준위 방폐물의 운반·저장 등 관리부터 최종 처분까지 전 과정을 사회적 합의 아래 안전하게 진행하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부지 선정은 물론이고 유치 지역 지원, 연구 개발, 인력 양성 등 정권과 세대를 아우르는 고민을 담고 있다. 현재 여야 간 쟁점은 영구 방폐장 가동 시점을 2050년으로 명기하느냐의 여부와 중간저장시설의 용량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다. 원전 셧다운 우려 등을 감안하면 세부 쟁점보다 조속한 특별법 제정이 중요한데 여야가 원전을 정치 쟁점화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

원전을 가까이 두고 있는 부울경 주민의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정부와 한수원이 기존 원전 내 저장시설 포화를 이유로 신규 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하고 있어 원전의 영구 방폐장화를 막기 위해서도 특별법이 시급하다. 특별법에 영구 방폐장의 가동 시점을 명문화해야 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또 특별법은 기존 원전 내 신규 저장시설 건설에 대한 규정도 담는데 지역 주민들의 동의 절차를 명확히 하고 저장 용량도 최초 설계 수명 기간 내 발생량으로 한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방안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는 중앙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과 산업계, 심지어 세대 간에도 이해가 부딪치는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이다. 1980년 중반 시작된 논의가 아직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그 사이 2030년부터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이 포화 상태를 맞는다. 특별법이 빨리 제정되지 않으면 기존 원전의 영구 방폐장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영구 방폐장 부지 선정 등 지난한 절차를 감안하면 지금 시작해도 늦은데 특별법 제정은 첫 관문인 법안소위에 막혀 있는 것이다. 세계 원전 운영 상위 10개국 중 영구 방폐장 건설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영구 방폐장 없이 원전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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