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R&D 예산 삭감, 흔들리는 해양수산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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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관련 예산 36% 이상 줄어” ‘
신해양강국 도약’ 헛구호 그칠 우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8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연구개발(R&D) 제도 혁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도 해양수산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기존 5310억 원에서 3376억 7300만 원으로 무려 36.4%나 삭감했다고 한다. 국회 위성곤 의원이 해양수산부 국감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8일 확인한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정부의 ‘제2차(2023~2027) 해양수산과학기술 육성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과 관련한 111개 사업 중 61개 사업의 연구개발 예산이 줄었다. 정부가 기본계획을 확정한 게 올해 2월의 일이다. 불과 8개월도 안 돼 이미 잡혀 있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모습은 좀체 이해하기 힘들다. 5년 단위로 책정한 장기 국정 계획을 이처럼 가볍게 흔들어도 되는 일인지 묻게 된다.

기본계획 수립은 현재 우리나라 해양수산과학기술이 답보 상태에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관련 학계에선 과거 한참 뒤처졌던 중국의 해양수산과학기술 수준이 근래에는 우리나라 턱밑까지 추격했다며 위기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우리 해양수산과학계의 체질 전환이 절박한 시점인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본계획 안에 탄소중립 에너지 대전환, 해양·극지 개척, 벤처 생태계 구현 등 모두 12개의 추진과제도 설정했다. 하지만 그렇게 겉으로만 입바른 소리를 해놓고 정작 꼭 필요한 예산은 대대적으로 깎아 버렸으니 거꾸로 가는 국정 운영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국가연구개발예산을 올해보다 16.7% 삭감한 25조 9000억 원으로 의결했다. 국내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우려에도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연구개발 이권 카르텔’ 언급 후 두 달 만에 강행됐다. 졸속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 집행이 편향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예산 삭감 정도가 지역과 분야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균형발전특별회계, 즉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 3460억 원에서 내년 1131억 원으로 67.3%나 줄인 게 그 예다. 전체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 정도의 4배다. 지방으로선 소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해양수산과학기술 분야도 그렇다.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산을 찾아 신해양강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관련 예산을 다른 분야보다 더 큰 폭으로 삭감해 버렸으니 어찌 납득할 수 있겠는가. 기초 과학기술 육성 없이 세계를 주도하는 강한 나라가 되기는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과 정부가 지적하는 바 연구개발 업계의 비도덕적이고 비효율적인 요소는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학기술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가 정치에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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