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 문화의 저력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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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문화부장

지난 13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폐막식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시작부터 분위기가 뜨거웠다. 배우와 감독들이 레드카펫을 밟으며 ‘볼하트’와 ‘손하트’를 날릴 때마다 관객들은 크게 환호했다. 폐막작인 중국 닝하오 감독의 ‘영화의 황제’가 시작되자 현장은 이내 차분해졌다. 홍콩 스타 류더화(유덕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 역을 맡아 코믹 연기를 펼쳤다. 직접 레드카펫에서 보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솔직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의 류더화를 오랜 만에 스크린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올해 BIFF는 인사 내홍으로 촉발된 이사장, 집행위원장, 운영위원장 등 집행부 핵심 인사들의 부재와 영화제 예산 삭감으로 성공적 개최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불식시키며 영화제를 안정적이며 내실 있게 치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축적된 BIFF의 영화제 운영에 대한 역량이 빛을 발했고, 부산 시민의 열렬한 지지도 이를 뒷받침했다.


BIFF 내홍·예산 삭감 딛고

올해 안정적 개최 역량 발휘


제1회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공연예술 해외 유통 가능성 보여


내달 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세계적 문화도시 되는 기폭제


물론 영화제 예산이 줄어들면서 영화 초청작과 관객 수가 감소해 아쉬움을 남겼다. 관객 수는 지난해 16만 1145명에서 14만 2432명으로 줄었다. 이는 공식 초청작이 지난해 242편에서 올해 209편으로 33편이 줄어든 여파다. 시민들이 부산 전역에서 영화제를 즐길 수 있는 ‘동네방네비프’도 예산 삭감 여파로 상영관이 지난해 17곳에서 올해 7곳으로 줄었다. 하지만 김해국제공항, 동래향교 등 이색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에서 영화 상영을 시도한 점은 신선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뤼크 베송 감독 등이 김해국제공항에서 관객으로 참여하는 진귀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내년도 ‘국내외영화제육성지원사업’ 예산이 50%나 삭감되면서 BIFF도 내년 영화제 준비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영화제 지원 예산 복원과 BIFF의 스폰서 확대 노력 등 자구책 마련이 과제로 남았다.

BIFF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부산 문화계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부산시 주최·부산문화재단 주관으로 지난 13~16일 부산시민회관 일대에서 열린 ‘제1회 2023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BPAM)’에서다. 이 행사에 참여한 부산 극단 ‘따뜻한사람’의 연극 ‘컨테이너’가 동유럽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인 루마니아 시비우 국제연극제와 루마니아 마린 소레스코 국립극장으로부터 동시 초청 러브콜을 받은 것이다. 또 영국의 아이러브스테이지는 대본 라이센스 계약으로 이 연극을 2025년 유럽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거대 선박의 컨테이너를 배경으로 난민, 탈북자, 밀입국자 등 인권 문제를 다룬 이 연극의 주제는 유럽에서도 관심 있는 이슈라고 한다. 극의 내용이 현실적이고 어렵지 않은 데다 K콘텐츠의 세계화로 유럽인들이 한국 영화에 익숙해진 부분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이번 공연예술마켓에는 무용, 음악, 연극, 마술, 코미디, 거리예술 등 92개 작품을 선보였고 예술가와 시민 등 1만 8000여 명이 참여했다. 지역 예술인이 세계로 진출하는 기회를 얻고, 전 세계 예술인이 부산에 와서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그 자체로 시민에게 축제가 된다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다. 올해 최대 성과는 부산이 새로운 형태의 공연예술 행사를 만들 능력을 입증했고, 공연예술의 해외 유통 경로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 행사가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잘 이어진다면 부산이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를 여는 영국의 에든버러나 프랑스의 아비뇽 같은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재정비, 안정적 재정 확보, 시민 관객과의 접점 확대 등도 고민해야 할 사항이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와 같이 영화, 미술 분야에서 국제 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콘서트홀 등 대형 공연장이 수 년 내 개관함으로써 공연예술 인프라도 비약적으로 확충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유통을 책임지는 공연예술마켓까지 빠르게 안착한다면 부산이 영화·미술·공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부상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부산을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도약시킬 기폭제는 다음 달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부산 유치다. 유치에 성공한다면 월드엑스포 추진 장소인 북항 일대 343만㎡에 부산오페라하우스를 핵심으로 많은 문화기반 시설이 들어오고, 원도심 기존 문화시설과 연계하면서 부산 문화에 선순환 구조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는 이미 여섯 번의 월드엑스포 개최를 통해 에펠탑, 오르세 미술관, 그랑팔레, 샤이요 궁전 등 유명한 문화·관광 시설을 갖췄다. 파리가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 문화 도시’로 된 것처럼 부산도 ‘문화 선도 도시’로 나아갈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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