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민수 NEC 교수 “중요한 건 공감과 관용… 앞만 보고 달려가면 중요한 것 놓칠 수 있어요” [인터뷰 전문]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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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예술가’로 부산시향 협연
연습은 아무리해도 끝이 없어
많이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어
“제자 임윤찬은 잘해 나갈 것”

‘손민수의 브람스 협주곡’ 타이틀로 열린 지난 27일 부산시향 제604회 정기 연주회 모습. 부산시향 제공 ‘손민수의 브람스 협주곡’ 타이틀로 열린 지난 27일 부산시향 제604회 정기 연주회 모습. 부산시향 제공

부산시향(예술감독 최수열)이 2021년 도입한 ‘올해의 예술가’ 세 번째 주인공 피아니스트 손민수(47) 뉴잉글랜드음악원(NEC) 교수가 올 한 해 두 번 부산을 찾아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 2번 연주를 마무리했다. ‘손민수의 브람스 협주곡’ 타이틀로 열린 지난 27일 부산시향 제604회 정기 연주회는 매진에 이어 기립박수를 끌어냈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은 단 두 곡뿐이지만 피아니스트에겐 기교적 어려움과 짜임새 덕분에 도전하고 싶은 곡 중 하나라고들 한다. ‘올해의 예술가’ 제도 덕분에 부산시향은 올해 두 곡을 완주할 수 있었다.

본 공연 이틀 전인 25일 부산문화회관 연습동 ‘다듬채’에서 손 교수를 만났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이 끝난 지 2시간 30분 정도 지난 시각이었는데 여전히 피아노 앞이었다. 지난봄 연주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손 교수가 사용하던 부산문화회관 연습실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만나자마자 “아직도 연습할 게 그렇게 많은가요”라고 묻자, 손 교수는 “브람스는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두 곡 모두 대곡이고 오케스트라와 아예 하나가 되어야 하므로 계속해서 연구하고 연습해도 끝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페인의 거장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이 보스턴심포니(BSO) 협연을 하러 오셨을 때라고 해요. 꽤 나이가 들었을 때였는데 안 보여서 찾았더니 한 구석방에서 업라이트 피아노를 치고 있더래요. 예술은, 파고들면 들수록 끝이 없어요. 주어진 시간 안에 최선을 다할 뿐이죠. 저 역시 부족한 게 많아서 계속 연습해야 하는 거고요.”

손 교수의 제자로 지난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였던 임윤찬(19)이 연습 시간을 묻던 한 기자에게 “연습은… 그냥… 그냥 쓰러질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스승과 빼닮은 듯하다. 손 교수는 2015년부터 8년간 재직했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떠나 이번 가을 학기부터 모교인 미국 보스턴의 NEC에 자리를 잡았다. 제자 임윤찬도 NEC로 ‘동반 이주’하면서 뉴욕 타임스에서도 크게 다룰 만큼 화제가 됐다. 현재 임윤찬은 손 교수 스튜디오 학생으로 돼 있지만 너무 많은 연주 스케줄로 얼굴은 거의 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사실 하고 싶은 걸 다 누리면서 음악과 피아노를 병행해 나가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학생을 가르칠 때나 주위 사람을 대할 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게 제 모토가 되고 있어요.”

손 교수는 이번 한국 방문 중에는 부산시향 연주 외에도 내달 3일 개막하는 ‘2023 포항음악제’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지휘자 없이 연주하고, 그다음 날엔 다리우스 미요의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으로 앙상블을 맞춘다. 그리고 보스턴으로 돌아가 로렌스 레서와 듀오 리사이틀(11월 13일)을 갖고, 11월 하순 다시 한국으로 나와 라흐마니노프 회화적 연습곡 리사이틀 등 몇 갠가의 음악회를 열기로 돼 있다.

연주 스케줄만큼이나 연주곡도 다양하다. 같은 곡으로 여러 곳을 돌며 순회 연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아서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제가 지금 숨 쉬고 있고, 이런 곡들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를 생각하면 이런 어려움 정도는 어떻게든 극복해 나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저는 피아노롤 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언젠가 뉴욕 타임스가 손 교수에 대해 “시적인 상상력을 가진 진실하고 사려 깊은 피아니스트”라고 평하고, 보스턴 글로브는 “그는 피아노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니 이런 모습 덕분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난봄에 이어 이번에 다시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지만, 손 교수는 연주 못지않게 대화할 때도 상당히 차분한 게 생각이 엄청 많은 사람 같았다. 손 교수의 스승으로 이달 초 별세한 미국의 ‘피아니스트 거장’ 러셀 셔먼(1930~2023)이 ‘건반 위의 철학자’로 통했던 것처럼 러셀 셔면과 그의 부인 변화경 피아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저한테는 정말 중요했던 두 분 선생님 영향이 컸습니다. 그분들이 음악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따라하지 않을 수 없어요. 두 분은 학생들에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거든요. 음악을 하려는 사람한테는 거기에 완전히 동화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어느새 30년이 훌쩍 지났네요.”

러셀 셔먼·박화경 피아니스트 부부와의 인연은 손 교수가 미국 미시간을 떠나 한예종으로 교수직을 옮기고, 다시 NEC로 자리를 옮기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시간대학에서 5년간 몸담고 있다가 한예종 교수직을 제안받고 고민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열여덟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쪽 생활이 익숙해졌을 때니까요. 그때 셔먼 선생님이 그랬어요. 한국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많다고 하는데 ‘더 빛나는 별들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요. 다시 NEC로 옮겨온 건, 늘 제 마음속에는 ‘저한테 어떤 기회가 주어진다면 거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학교는 두 분이 있는 NEC’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음악가한테 NEC가 끼친 영향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저한테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물론 그런 선택에 대해서 후회는 없다고도 했다. 그런 태도마저도 셔먼한테 배운 거였는지 모른다. “삶에선, 살아간다는 건 늘 선택이잖아요. 선생님은 굉장히 차갑다고 느낄 정도로 어떤 결정을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으셨어요. 저도 닮은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손민수. 부산시향 제공 피아니스트 손민수. 부산시향 제공

손 교수가 음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두 가지를 꼽았다. ‘컴패션(compassion)’과 ‘체러티(charity)’이다. “저도 노력하지만 실천은 잘 못해 조심스럽긴 하지만, 컴패션입니다. 한국어 번역이 좀 어렵긴 한데, 굳이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하나는 ‘체러티’인데 이건 ‘너그러움’ 혹은 ‘관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내가 추구하는 것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못 볼 수 있는 것들이죠. 음악만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자기 생각을 대입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음악에 들어 있는 다양한 것들, 즉 기쁨 슬픔 같은 것도 표현해야 하는데, 공감과 너그러움이 없으면 안 되겠죠.”

그런데 손 교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연주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가 소비돼 힘들다고도 토로했다. 자신이 스승으로부터 받은 게 많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커서 지금은 최선을 다하지만, 언젠가는 그 마음의 빚을 다 갚으면 연주자로만 살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테크닉만 지도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분야에 있든 선생이라는 존재는 반 이상 심리상담사가 되는 것 같아요. 셔먼 선생님이 저한테 그러셨듯 저 역시도 제 학생들한테 그렇게 하고 있고요. 어떻게 보면 가르치는 일이 결국 세대 간 고리를 만드는 것이기도 해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 자신을 늘 그렇게 다독이는 편입니다.”

향후 특별 연주나 레코딩 계획이 있는지도 물었다.

“물론 연주도 있고 레코딩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굉장히 단기적인 목표입니다.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단지 무대에 서고 싶어서라든가 레코딩을 해서 음악을 기록물로 남겨 두고 싶다는 것보다는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 브람스 협주곡만 하더라도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미리 정해진 연주 방식 즉 인터프리테이션(interpretation·해석)에 맞추는 게 아니라 숨 쉬듯 날씨가 바뀌듯 똑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완성도가 달라지고,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한순간이라도 음악과 내가 일치하는 순간을 찾게 되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주거든요.”

그래서 이번엔 질문을 바꾸었다. “그럼 단기적인 계획은 있으신가요?” 그러자 손 교수는 “30대쯤 되었을 때 꼭 두 가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있다”면서 “그중 하나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는 힘들게나마 숙제를 마쳤는데 두 번째인 바흐 평균율 전곡 연주가 남았다”고 밝혔다. 손 교수 인터뷰가 끝나고 우연히 예술의전당 대관 일정을 확인했더니 내년 11월 9일 콘서트홀에 ‘피아니스트 손민수 바흐 평균율 1권 전곡 연주’가 잡혀 있다. 그대로 된다면 작은 도전을 이룰 수 있게 돼 그다음 프로젝트로 나아갈 듯하다.

한편 손 교수와 헤어지면서 임윤찬의 근황을 물었다. ‘임윤찬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이 너무나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서 ‘피아니스트 손민수’에겐 가급적 질문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우회적인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이라고도 전했다. “‘그 학생’은 요즘 많이 바쁘던데 교수님이 계속 지도하시는 건 맞나요?” 그러자 손 교수는 “네, 제 스튜디오 소속입니다. 연주 스케줄이 엄청나서 얼굴 보기는 힘들지만요. 사실 윤찬에 관한 질문은 너무 많이 받았고 똑같은 대답이라 부담스럽기도 한데, 그것보다는 제가 가르치는 많은 학생이 있는데 윤찬이 이름만 자꾸 연결하니 다른 학생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윤찬이는 잘해 나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스승은 스승이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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