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푸른 눈의 성자’ 위트컴, 영원히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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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제작 등 근래 추모 움직임 활발
국경 넘어 인류애 실천한 뜻 되새겨야

생전 리처드 위트컴(왼쪽) 장군 모습. 부산창작오페라단 제공 생전 리처드 위트컴(왼쪽) 장군 모습. 부산창작오페라단 제공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진정한 인류애를 실천해 ‘푸른 눈의 성자’로 불리는 리처드 위트컴(1894~1982)의 일대기가 오페라로 만들어져 무대에 올려진다. (사)부산창작오페라단이 오는 12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선보이는 오페라 ‘푸른 눈의 선한 사마리안’이다. 아직 미완의 작품으로, 이날 공연은 전체 3막 중 기 완성된 1막까지의 내용을 갈라 추모음악회 형식으로 진행한다. 전막 공연은 2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위트컴 장군을 모르는 이들이 많아서 오페라로 그를 기념하고자 한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이다. 그 말마따나 이번 공연을 통해 위트컴의 삶과 정신이 널리 알려지길 기대한다.

위트컴은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유엔군 군수사령관으로서 부산에 부임했다. 그해 11월 부산역 대화재가 발생하자 상부 승인도 없이 군수품을 풀어 이재민을 도운 일화는 유명하다. 1954년 퇴역 이후에도 위트컴은 고국인 미국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일생을 보냈다. 이 기간 그는 부산에서 전쟁고아를 돕고 병원과 대학 설립에 기여하는 한편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고문으로 활약하는 등 전후 한국의 재건을 위해 헌신했다. 1982년 유명을 달리할 때도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묻히길 원했고, 결국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국적을 떠나 그는 영원한 한국인, 그중에서도 부산 사람이라 하겠다.

위트컴의 이런 행적이 세간에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의 삶과 정신에 대한 학술적 조명은 거의 없었고, 10여 년 전부터 지역 언론에 간헐적으로 소개되면서 비로소 위트컴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래 들어 위트컴의 공적을 치하하고 기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위트컴에게 대한민국 국민훈장 최고 영예인 무궁화장을 추서했고, 부산에서는 시민 모금을 통한 위트컴 조형물 건립 운동이 펼쳐져 오는 11일 마침내 유엔평화공원에서 제막식이 열린다. 위트컴의 공헌에 비춰보면 이러한 움직임은 다소 늦었으나 마땅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트컴에 대한 기억이 훈장이나 조형물, 오페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위트컴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앞장선 의인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작금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사망자와 실종자가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그 대부분이 어린이와 여성이라고 한다.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도 극심하다. 하지만 전쟁을 제어할 국제기구는 제 기능을 상실했다. 절망과 비극의 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인종과 국경을 넘어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위트컴의 그 고귀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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