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수십조 ‘오일머니’에 부산 지지표 ‘미끄러졌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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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 표 차이에 판세 분석 허술 비난
2차 결선 투표 역전 전략 결국 실패
사우디 막대한 물량 공세 결정타 작용
캐스팅보트 국가들도 결국 마음 돌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2030세계박람회 유치 경쟁국 간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사우디 측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2030세계박람회 유치 경쟁국 간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사우디 측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개최지 결정에서 대한민국이 예상을 넘는 표차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린 이유에 대한 국민적 궁금증이 크다. 무엇보다 2030엑스포 유치 실패는 철저하게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국제외교 논리와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물량 공세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정부의 정교하지 못한 전략과 판세 인식도 한몫했다.

■예상과 달랐던 투표 결과

29일 오전 2시(현지시간 28일 오후 6시) 프랑스 파리 외곽도시 이시레물리노의 전시시설 ‘팔레 드 콩그레’는 환희와 탄식으로 뒤섞였다. 이날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투표에 참가한 165개국의 표 중 3분의 2인 110표를 넘는 119표를 사우디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사우디 BIE 대표단은 서로를 껴안으며 환희의 눈물을 보인 반면, 한국 대표단은 그저 망연자실하게 화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차 투표에서 부산이 못해도 50표 이상, 70~80표 수준을 얻어야 2차에서 ‘해볼 만 하다’는 분석이 있었다. 실제 투표 결과를 정산해 보니 이에 한참 못 미치는 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이탈리아 로마는 투표 직전 판세 분석에서 15~20표 수준일 것으로 예측됐는데, 실제로 17표를 득표했다.

투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한국과 사우디 모두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투표 직전 사우디 측 인사들은 총회장 입구에 진을 치고 한국 대표단과 접촉하는 BIE 회원국 대표들을 일일이 막아설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사우디 여성 몇 명이 총회장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 측 인사가 나타나서 회원국 대표들과 인사하려 하자 앞을 막아서거나 대화를 하고 있으면 툭툭 쳐서 아예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한국 인사가 BIE 회원국 대표와 악수하려 손을 뻗으면 그조차 하지 못하도록 손을 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까지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실제 투표 결과를 확인해 보니 사우디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1차 투표에서 로마를 떨어뜨리고 2차에서 로마표까지 흡수하고, 부동표를 쓸어담겠다던 한국 전략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드러났다.

■물량 공세 못 버틴 개발도상국

이번 결과를 두고 예상됐던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이탈리아에 이어 마지막으로 PT 무대에 오른 사우디는 시작부터 “앞서 사우디 지지를 표한 130여 개국에 사의를 표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투표를 앞두고 공식·비공식으로 사우디를 지지하는 국가가 120개국이 넘은 만큼 한국이 지나치게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지지를 표명하고 한국에 투표한 국가는 10개국 안팎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대표단은 BIE 총회 직전까지 최종 결과를 뒤흔들 ‘캐스팅 보트’로 아프리카·카리브해 도서국을 꼽고 이들 국가 공략에 집중했다. 하지만 표심을 가져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 국가는 엑스포 유치 전 초반부터 사우디의 막대한 차관과 공적개발 원조 약속을 받고 사우디 공식 지지를 표명했다.

부산은 국제 협력 프로젝트 ‘부산 이니셔티브’를 내세우며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당장 현실적인 당근이 없는 미래 청사진 제시는 각박한 국제 무대에서 통하지 않았다.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전폭적인 지원 역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BIE 총회를 앞두고 사우디는 아프리카 국가에만 250억 달러(약 33조 원)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함께 가장 많은 표(49표)를 보유한 대륙이다.

사우디는 마지막 PT에서도 개발도상국 지원을 공언했다. 사우디 왕자인 파이살 빈 파르한 외무장관은 연사로 나와 “1개 국가당 1개 국가관 제공 패키지(최소 500㎡ 규모)를 통해 약 3억 4800만 달러(약 4507억 원) 규모의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등록엑스포의 경우 인정엑스포와 달리 국가관은 엑스포 개최국이 아닌 해당 국가가 짓는 것이 원칙인데, 국가관을 지을 여력이 안되는 개도국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오일머니를 앞세운 경쟁국의 유치 활동에 대응이 쉽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원팀이 전 세계에 부산을 알리고 세계 여러 나라와 부산이 협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리=박태우·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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