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6의 아버지 보이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묻다
보이드 / 로버트 코람
전설적인 전투기 조종사에서
불의 맞서다 제거 대상 찍혀
학자 변신 걸프전 승리 이끌어
전설적인 전투기 조종사 존 보이드는 F-15과 F-16 개발에 기여하고, 군사고문으로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존 보이드. 한국전쟁에 미군 조종사로 참여했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 인물에 대한 600쪽이 넘는 평전이다. 보이드는 제2차 세계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에 참전했고, 걸프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연구에 기반한 개념인 '4세대 전쟁'은 "앞으로의 전쟁은 전면전 양상이 아닌 전쟁과 평화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테러가 그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그의 선견지명은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이만한 전쟁 영웅이 드문데 미국인들조차 어째서 그를 잘 모른다는 것일까.
보이드는 1950년대 미국 최고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미 공군 전투기무기학교 교관 시절에는 모의 공중전에서 어떤 상대라도 40초 안에 이길 수 있다는 의미로 '40초 보이드'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화 '탑건'에서 최고의 파일럿이자 전설인 매버릭(톰 크루즈)이 교관으로 활약하는 장면이 저절로 연상이 된다. 아무튼 보이드에게 미 공군 최고 전투기 조종사들과 해군·해병대 조종사들이 수시로 도전했지만 그는 결코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전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조종사였다. 1959년 공대공 전투라는 난해한 영역을 처음으로 정리해 '공중전 연구'를 집필한 데서 소질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이 문서는 미 공군 공중전의 바이블이 되었고, 기밀 해제가 된 후 전 세계 공군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공군은 될성부른 보이드를 다시 대학으로 보냈는데, 거기서 그는 열역학 시험공부를 하다 사고(?)를 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당시를 떠올리다 열역학과 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에너지-기동성 이론'을 만든 것이다. 이 이론까지 우리가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덕분에 걸작으로 평가받는 F-15과 F-16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보이드는 지금도 이 두 항공기의 아버지로 불린다.
문제는 타협할 줄 몰랐다는 점이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군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들고 말았다. 군사 천재가 펜타곤의 이단아로 낙인찍혀 제거 대상이 되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보이드는 1975년 48세의 나이에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대령으로 전역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걸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조직이나 인간의 생리는 비슷한 것 같아 씁쓸하다.
보이드가 절대 쉬운 길로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방산업체에 가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전쟁에서 승리하는 군사이론을 연구하는 가난한 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다양한 학문을 독학으로 섭렵해 빠른 의사결정 모델인 '우다 루프(OODA Loop)'를 만들고, 딕 체니 국방장관의 군사고문으로서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실 전쟁에서 승리가 단순하게 더 큰 파괴력을 갖는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휘관이 다양한 변수를 정확하게 고려해 묘수로 활용할 수 있을 때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를 벌이는 시기에 주식 거래와 골프를 하는 지휘관 아래서 전쟁 승리는 '애나콩콩'이다.
저자인 로버트 코람은 기자 출신인데 맨 뒤쪽에 이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한 사람들의 명단을 게재했는데 세어 보니 모두 100명이 훌쩍 넘는다. 이처럼 많은 이들을 인터뷰하고 관련 기록 및 비밀 해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탄생시킨 역작이다. 보이드는 일에만 전념하느라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니 안타깝다. 가장 인상적인 문장 하나만 꼽자면 “되느냐, 하느냐(To Be or to Do)"라고 묻는 대목이다. 인생의 갈림길에 있는 후배에게 "출세하는 사람이 되느냐, 변화를 불러올 중요한 일을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로버트 코람 지음/김진용 옮김/플래닛미디어/640쪽/2만 98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