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그리고 만들어 간다… 이진용 ‘시간의 풍경’ 展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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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까지 비트리 갤러리
시간을 담은 사물과 풍경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자리 잡은 40여 년 된 주택. 겉모습은 주변 집과 다르지 않지만, 사실 이 곳은 꽤 유명한 공간이다. 국가대표급 갤러리를 비롯해 유명 아트페어에서 경험을 쌓은 정유선 대표가 비트리 갤러리 서울점을 성공시킨 후 부산의 낡은 주택을 두 번째 갤러리로 선택한 것이다.

고난의 연속이었던 개조 공사를 끝내고 지난 7월 비트리 갤러리 부산점이 문 열었다. 5개월여 만에 부산에서 찾아가야 할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사실 특이한 건물로 알려졌지만, 비트리 갤러리의 가장 큰 미덕은 좋은 전시이다. 부산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비트리 갤러리의 올해 마지막 전시는 이진용 작가의 ‘시간의 풍경’ 전이다.

갤러리에서 이 작가의 작품을 본 관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있다. “이거 사진인가요? 그림인가요?”이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이 작가의 작품은 사물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다. 이 작품은 사물을 보고 그린 것도, 사물을 촬영한 사진을 보고 그린 것도 아니다. 실제 존재하는 것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작가가 그때 그때 떠오르는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구상으로 보이지만 결국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는 사물 혹은 풍경을 작가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추상 작품이다.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선 시간의 표정, 시간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난다. 오래된 책, 목판활자, 종이 등 세월의 무게를 담은 사물은 작가만의 화풍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오래전 시작되었다고 한다. 40년 동안 수 만점의 책과 골동품을 모아 온 작가는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덕분에 작가의 수집 컬렉션은 미술계에선 유명한 일화이다. 수집품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전용 책장과 가구까지 제작했고 부산 서구 대신동 작가의 작업실은 유명 인테리어 잡지가 소개할 정도로 잘 꾸며져 있다.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진용 ‘Moment’. 비트리 갤러리 제공

‘시간의 풍경’ 전은 비트리 갤러리 서울점과 부산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서울점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며 부산점은 사물의 부분을 심도있게 보여준다. 부산점의 작품은 마치 숨은그림찾기 놀이하는 듯 사물의 일부가 확대된 그림에서 어떤 사물인지 맞히는 재미가 있다.

비트리 갤러리 정유선 대표는 “일중독이라고 불릴 정도로 40년간 작업에만 몰두한 작가의 작품들이 큰 울림을 가지고 있다. 고도의 집중과 노동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마치 수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이진용 ‘인 마이 메모리(in my memory)’.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진용 ‘인 마이 메모리(in my memory)’. 비트리 갤러리 제공

부산점에서만 만나는 오브제 시리즈, 레진 연작 ‘인 마이 메모리(in my memory)’는 특별하다. 선사시대에 생성된 호박속 모기처럼, 레진 안에 그의 컬렉션을 집어넣은 작품이다. 레진이라는 정지된 시간에 오브제를 넣어 더 이상 변화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1987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2023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종의 타임캡슐처럼 매년 관심을 가진 컬렉션을 레진 속에 가두어 영원히 보관한다. 레진 시리즈는 국제 아트페어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전시장에 선 이진용 작가. 비트리 갤러리 제공 전시장에 선 이진용 작가. 비트리 갤러리 제공

이 작가는 동아대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부산에서 작업을 이어가지만, 한국의 시립미술관들을 비롯해 외국 유명 미술관, 특급 호텔들이 소장할 정도로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시간의 풍경’ 전은 16일까지 열린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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