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건강은 도덕도 능력도 아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혜규 모바일국 플랫폼콘텐츠부 차장

건강검진의 계절이다. 검진 결과 앞에 초연한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번에 위험하다고 지적받은 지표가 좋아지면 안도한다. 재검을 받고 불안해하거나 들여다보니 크게 걱정할 건 아니라는 말에 한숨을 돌리기도 한다. 가장 많은 유형은 빨간불이나 노란등 수준의 경고를 받고 새해 결심을 하는 것이다. 내년에는 꼭 운동을 할 거야. 식습관도 바꾸고 살도 빼야지.

실제로 건강검진 결과는 성적표 비슷하다. 동일 연령 평균보다 9점이 높아 종합 건강 성적이 ‘최우수’고 100명 중에는 5등을 했다는 식이다. 심장 혈관 췌장 등 과목별로 세부 등수도 나온다. 등수가 높으면 뿌듯하고, 이대로라면 남들보다 몇 년 빨리 죽는다는 예언은 벌을 받는 것 같다.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지켜야 할 습관과 ‘노력하면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다’는 독려까지 받고 나면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건강은 노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대인의 수명이 길어지고 성인병도 늘어난 걸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울증 발병률이 치솟고 자살이 질환보다 높은 사망 원인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의지를 갖고는 나라나 지역별로 다른 평균 수명이나 학력이나 소득과 수명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지 못한다. 장수마을이나 직업병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세계를 휩쓴 감염병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다.

여전히 건강은 손쉽게 개인적인 차원의 과업으로 분류된다. 정상 체중을 넘은 사람은 ‘자기 관리를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직장인은 다치거나 아파서 휴가를 낼 때도 ‘내 부주의로 조직에 손해를 끼친다’는 죄책감을 느낀다. 보디 프로필 사진처럼 노력해서 성취한 몸을 전시하고, 매 순간 서로를 평가하고 평가받는 소셜미디어는 건강을 도덕성이나, 더 나아가 능력주의의 잣대로 보게 한다. 건강한 몸과 정신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노력이 부족한 네 탓이다.

운동 습관만 해도 모두에게 출발선이 같지 않다. 집 주변에 공원이나 평지가 없다면, 방에 요가 매트를 펼칠 만한 공간도 마땅치 않다면, 직장이 멀어서 출퇴근만으로 진이 빠진다면, 육아나 간병 같은 돌봄 노동에 매여 있다면 홈트도 걷기도 사치일 수 있다. 같은 운동을 한다고 해도 도시의 대기질이 나쁘다면, 값싸고 몸에 나쁜 편의점 음식이 주식이라면 결과는 또 다를 것이다.

부산과 울산의 행복감 지수가 전국 16개 시·도 중 공동 14위라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지역사회건강조사를 심층 분석한 결과다. 부산·울산·경남 권역에서 이웃 상호 신뢰감, 경제활동 참가율, 인구 1000명당 공원 개수와 체육시설 수가 행복감 지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1인 가구율, 기초연금 수급자율, 주중 여가시간에 4시간 이상 앉아 있는 비율, 주점업 수 등은 사망률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건강과 평등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가장 큰 임무다.” 세계보건기구(WHO) 세계건강증진 대회에서 이런 내용의 헬싱키선언이 나온 게 2013년이다. 그로부터 10년 만에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국가와 지자체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건강을 위해 ‘모든 정책에 건강을’ 담아야 한다. 노력과 결심을 촉구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