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제복지원 피해 국가배상 첫 판결에 항소한 정부
“이제야 한 풀게 됐다”던 피해자들 반발
타 소송 선례 등 항소 이유 납득 어려워
정부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관련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판결에 결국 항소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총 145억 8000만 원의 배상액을 인정했다. 이는 재판부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가 저지른 과실이자 범죄행위로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부는 이에 불복한 것이다. 법무부가 항소장을 제출한 10일은 항소 기한을 불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동안 “항소하지 말아 달라”며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한 피해자들의 바람은 이로써 무참히 꺾였고, 피해자들은 또다시 법정에서 힘겨운 다툼을 이어가게 됐다.
지난달 법원의 배상 판결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전까지 정부는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돼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 시효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2022년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을 때 피해자들은 비록 늦게나마 한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국가에 고맙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이번 항소를 통해 피해자들의 그 기대를 무참히 짓밟은 셈이다. 당연히 피해자들은 “대체 우리를 몇 번 죽이는 거냐”며 반발한다. 법무부는 다수의 비슷한 소송에 선례가 될 수 있고 배상액의 적정성 등에 대해 상급심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항소 이유로 제시했으나,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과거 사례에 비춰 국가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할 경우 항소하는 것은 드문 일인 데도 정부가 굳이 항소를 감행한 데 아쉬움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상액의 적정성” 운운도 재판부가 ‘국가의 범죄행위’라고 명시한 사안의 경중을 배상액의 많고 적음으로 따지려는 것으로 보여 초라하다.
정부가 항소장을 제출한 10일, 진실화해위는 제3차 형제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대상자 153명을 발표했다. 앞서 두 차례의 진실규명 결정을 통해 확인된 피해자는 337명이었다. 이처럼 형제복지원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며, 피해자로 밝혀지는 이들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조치는 더디기만 하다. 올해부터 부산시의 의료비 지원 기준이 바뀌면서 일부 피해자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그 예다. 정부로서 이런 피해자들에게 사죄는 못 할망정 어렵사리 이끌어 낸 법원의 배상 판결마저 부정해서야 되겠는가. 법리에 앞서 인간의 도리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