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여행’ 아니라 ‘고행’…내 맘대로 다니는 게 최고 [청바지의 여행도전] ②
<청바지의여행도전 ② 자유여행>
40대 이상 대다수 패키지 선택 경향
쇼핑 탓 일정 빡빡해 금세 힘들어져
여유 두고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워
여행 참맛 원한다면 자유롭게 떠나야
비용, 체력 고려해 일정 편하게 조절
원하는 곳 깊숙이 오래 살필 수 있어
패키지보다 비용도 많이 절감 가능해
걱정 접고 ‘되는 대로’ 다니는 게 최고
2002년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끼리는 외국에 처음 가는 것이어서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여행사를 통해 4박5일 패키지여행에 참가했다. 아쉽게도 여행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강행군이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실제 관광 명소를 둘러보는 시간은 짧았다. 대부분 휙 하며 지나가는 수준이어서 가족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도 어려웠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의무 쇼핑’ 때문이었다. 매일 두 군데씩 쇼핑센터에 들러 각각 2~3시간을 보내다 보니 정작 여행지에서 지내는 시간은 너무 짧았던 것이다. 크게 실망한 우리 가족은 이후부터는 절대 패키지여행을 고려하지 않는다.
패키지여행을 더 기피하게 만든 또 다른 ‘추억’은 2007년 스위스의 설산 융프라우요흐에 가족 자유여행을 갔을 때 일어났다. 우리는 곳곳을 둘러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추위를 달래러 실내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음식을 먹은 뒤 다시 사진을 찍으러 밖에 나갔다. 이때 패키지여행에 참가한 한국인 20여 명이 막 올라왔는데 안내인이 그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진 찍는 데 5분 드릴게요. 서둘러 내려가야 하니 지체하지 마세요.”
여행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해외여행객 중 40% 정도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한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 신중년 이후 세대가 패키지여행을 매우 선호한다. 전체 패키지여행객 중에서 40~50대가 49%, 60대 이상이 27% 수준이라고 하니 40대 이상이 4분의 3을 차지하는 셈이다.
중년 이상이 패키지여행을 고르는 것은 참 편안하게 보여서다.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고 여행 가이드만 따라다니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 것일까. 아침 7~8시에 호텔에서 나서 하루 종일 버스만 타고 다니다 밤 8시에 녹초가 돼 호텔로 돌아오는 게 정말 여행인 것일까. 버스만 타면 꾸벅꾸벅 졸다가 차에서 내리면 단체사진 한 장만 찍고 다시 버스에 오르는 게 정말 여행인 것일까.
■내 마음대로 여행
미국의 작가 마이라 칼만은 ‘나의 꿈은 혼자 세상을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다. 작은 배낭에 모든 필수품을 단정하게 정리한 채. 카메라와 노트북컴퓨터, 여행용 그림도구와 모자, 좋은 신발도 넣고…’라며 자유여행의 즐거움을 피력한 바 있다.
여행의 참맛을 알고 싶다면 칼만처럼 여행해 보는 게 좋다. 그래서 청바지 신중년에게 예약하기 편하고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패키지여행의 습관을 버리라 권하고 싶다. 대신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는 자유여행(수십 년 전 청바지가 정말 청춘이었을 때에는 배낭여행이라고 불렀던)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을 추천한다.
자유여행에는 패키지여행에 없는 많은 장점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장점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 취미, 체력 등을 고려해 원하는 일정, 코스를 원하는 대로 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체력이 약하면 여행하는 시간을 조절하면 된다. 시차 때문에 힘들면 아침에 느긋하게 하루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정말 피곤하면 하루 종일 호텔에 머물면서 잠만 자거나, 지겨워지면 호텔 인근에서 가볍게 산책만 해도 된다. 돌아다니다 힘들면 그냥 호텔로 돌아가거나, 카페나 야외 벤치에 앉아 ‘멍 때리기’를 하거나 ‘사람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피곤하고 힘들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된다. 큰돈을 들여 외국에 갔는데 고생할 필요는 없다.
의무적으로 쇼핑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 쇼핑하고 싶다면 마음에 드는 백화점, 쇼핑센터, 대형몰, 재래시장에 직접 가서 바가지 가격이 아니라 현지인이 사는 가격과 똑같이 구입하면 된다. 쇼핑을 좋아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 종일 쇼핑센터에 머물러도 된다. 거기서 식사하고 커피도 마시고, 방금 산 현지 과자나 과일도 먹어보고….
기자가 자유여행을 처음 갔을 때에는 늘 박물관, 대성당, 유적지만 돌아다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백화점, 대형마트에도 가고 재래시장, 벼룩시장에도 간다. 우리나라와 같은 물건을 팔아도 디자인, 크기, 색깔 등이 달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곳에서 미리 조리된 음식을 사서 호텔에 들어가 먹을 수도 있다. 2010년 독일 뮌헨에 갔을 때에는 시청 앞 백화점 지하에서 튀긴 닭고기를 사서 호텔방에서 먹었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맛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깊숙이 오래 들여다보다
자유여행의 두 번째 장점은 많이 돌아다니지 않고 한두 군데만 보더라도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아주 깊숙이 둘러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리 공부해서 가면 더 좋지만, 모르더라도 여행지에 붙은 안내판을 천천히 읽으면 된다. 마음에 드는 성당이나 궁전 안에는 요금을 내고 들어가 하나하나 다 살펴볼 수 있고, 기념품가게에서는 원하는 만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드는 성당에 들어가 신도석에 앉아 잠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2022년 오스트리아 빈에 갔을 때 합스부르크 왕실 공주, 왕자의 결혼식장이었다는 아우구스티너키어셔(아우구스트 교회)에 들어갔다가 마침 교회 연주자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걸 알게 됐다. 이미 20여 명이 신도석에 앉아 오르간 연주를 듣고 있었다. 기자도 한쪽 구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1시간 동안 오르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취향에 따라 코스를 조절해 집중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 미술을 좋아하면 박물관이나 미술관, 또는 지역의 조그만 갤러리만 돌아보면 된다. 역사를 좋아하면 역사가 담긴 장소를 골라 다니면 된다. 기독교 신자라면 크고 작은 교회, 성당만 찾아다닐 수 있다. 커피를 좋아하면 유명한 카페만 들러도 된다. 기자는 2022년 동유럽에 갔을 때 체코 프라하에서는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를 주제로 잡아 그들과 관련된 곳만 집중적으로 돌아다녔다.
■비용 절감과 익명성
자유여행의 세 번째 장점은 비용 절감이다. 직접 일정과 코스를 고르고 항공권과 호텔도 직접 예약한다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대개 13박15일로 자유여행을 다녔는데, 9박10일 일정의 패키지여행과 비슷한 비용이 들었다.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적게는 10%, 많게는 20~30%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돈이 부족하면 사정에 맞춰 호텔, 교통편을 예약하면 되고, 멋진 식당에서 코스요리를 먹는 대신 샌드위치를 사 먹으면 된다.
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자유여행의 장점은 ‘익명성’이다. 외국에서는 한국어를 듣지 않아도 되고,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당연히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 일도 없다. 영국 언론인 겸 작가인 스톰 제임슨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외국 도시에서 홀로 걸어가는 것만큼 행복한 때는 없다’고 말했다. 남들 눈에 안 보이는 투명인간이 되거나, 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때 기분이 얼마나 황홀한지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많은 사람이 자유여행을 기피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제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할지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현지로 날아갈 항공권, 잠을 잘 호텔 숙박권만 잘 갖고 있으면 된다. 현지에 가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결된다.
처음에 정한 일정대로 돌아다니지 못해도 문제가 될 건 없다. 일정이 흐트러지면 그냥 포기하면 된다. 가고 싶은 곳에 못 가면 다른 곳에 가면 된다. 버스나 열차를 놓치면 다음 버스나 열차를 타면 된다. 시간이 더 걸리고 늦어질 뿐 어떻게 하더라도 여행은 진행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미리 정해온 일정을 완벽하게 소화하지는 못한다. 여행은 실수와 만회, 당혹감과 안도감의 연속이며, 그래서 재미있고 즐거운 것이다.
10년 전 스페인 코르도바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로 가야 하는데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현지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할머니는 영어를, 기자는 스페인어를 못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는 서로 완벽하게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초 예정했던 것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코르도바 현지인이 사는 주택지를 둘러볼 수 있었고, 살아 펄떡거리는 스페인어를 들으면서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지 않은가.
남태우 기자 leo@busan.com